
1. 서론: 음모론이 현실로, ‘죽은 인터넷 이론’
‘죽은 인터넷 이론’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2010년대 후반에 등장한 이 이론은 인터넷의 대부분이 사람이 만든 콘텐츠가 아닌, 봇이나 AI가 생성한 의미 없는 정보로 채워지고 있다는 다소 섬뜩한 주장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음모론으로 치부되었지만, 이제는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2024년, 사이버 보안 기업 임페르바는 전 세계 인터넷 트래픽의 절반에 가까운 49.6%가 봇에 의해 생성된다고 발표했고, 유로폴은 2026년까지 온라인 콘텐츠의 90%가 AI에 의해 만들어질 것이라 예측했습니다. AI가 만든 유익한 정보라면 괜찮지 않냐고요?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인터넷의 본질이 위협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2. 황금기의 추억: 인간이 중심이었던 초기 인터넷
1990년대 월드와이드웹(WWW)이 처음 등장했을 때, 그 비전은 명확했습니다. 전 세계 사람들을 연결하고, 지식을 자유롭게 공유하는 민주적인 플랫폼이었죠. 실제로 초기 인터넷은 ‘인간이 주도한 황금기’였습니다. 사람들은 개인 홈페이지와 블로그에 자신의 이야기, 정보, 창작물을 올렸고, 그 속에서 소통하며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나갔습니다. 모든 콘텐츠 뒤에는 사람이 있었고, 그들의 생각과 감정이 담겨 있었죠. 하지만 닷컴 버블 붕괴 이후, 인터넷은 광고를 중심으로 한 거대 플랫폼 시대로 전환되기 시작했습니다.

3. 알고리즘과 봇의 습격
페이스북, 유튜브와 같은 거대 플랫폼들은 사용자를 더 오래 붙잡아 두기 위해 ‘알고리즘’을 도입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정보를 찾아 나서는 대신, 알고리즘이 추천해 주는 콘텐츠를 소비하게 되었죠. 이 변화는 봇에게 엄청난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광고업자나 여론을 조작하려는 세력들은 봇을 이용해 가짜 좋아요, 가짜 댓글, 광고성 게시물을 쏟아내며 알고리즘을 속이기 시작했습니다. 2016년 미국 대선 당시의 가짜 뉴스 파문은 이러한 봇의 영향력이 단순한 광고를 넘어 사회 전체를 뒤흔들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습니다.

4. AI의 등장과 ‘슬롭(Slop)’의 범람
그리고 마침내, 생성형 AI가 등장하며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과거의 봇이 사람이 만든 콘텐츠를 ‘퍼뜨리는’ 역할에 그쳤다면, 이제 AI는 스스로 콘텐츠를 ‘생성’하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AI가 만들어내는 저품질의 무의미한 콘텐츠, 이른바 ‘AI 슬롭(Slop)’이 인터넷을 뒤덮고 있다는 점입니다. 검색의 제왕 구글조차 AI 생성 결과를 검색 상단에 보여주기 시작하며 사실상 항복을 선언했습니다. 이는 검색의 종말을 의미하며, 양질의 정보를 제공하던 수많은 웹사이트의 트래픽 감소와 수익 악화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5. 정보의 쓰레기장, 그리고 우리의 미래
이대로 가다 보면 어떤 미래가 펼쳐질까요? AI는 자신이 만든 저품질 데이터를 다시 학습하며 품질이 저하되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습니다. 창작자들은 AI가 만든 쓰레기 더미에 묻혀버리는 자신의 콘텐츠를 보며 창작 의욕을 잃게 될 것입니다. 결국 인터넷은 아무도 찾지 않는, 회색빛의 정보 쓰레기장이 될지도 모릅니다. 더 큰 문제는 정보의 독점입니다. 다양한 시각이 사라지고 AI가 제시하는 단 하나의 ‘정답’만을 믿게 된다면, 이는 소수의 누군가에 의해 통제되는 사회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옵니다. 물론, 이 위기를 극복하고 더 나은 인터넷으로 나아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빠른 지금,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