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서론: 다시 불붙은 100년의 갈등
최근 중국과 일본의 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 위태로운 길을 걷고 있습니다. “중국이 대만을 공격하면, 일본을 공격하는 것으로 간주하겠다”는 일본 고위 정치인의 강경 발언은 중국 대륙을 들끓게 만들었습니다. 중국 관영 매체는 연일 비난을 쏟아내고, 무력 시위와 함께 일본 여행 자제령까지 내리며 전방위적 압박에 나섰습니다. 항공권 취소가 빗발치고 일본 수산물 불매 운동이 벌어지는가 하면, 인기 애니메이션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 개봉까지 연기될 정도였죠. 이처럼 오늘날의 갈등은 단순한 외교적 마찰을 넘어, 경제, 문화, 그리고 국민 감정까지 뒤얽힌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습니다. 하지만 두 나라의 악연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그 뿌리는 100여 년 전, 아시아의 패권을 두고 격돌했던 근대사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2. 역사의 시작: 청일전쟁과 뒤바뀐 아시아의 운명
19세기 말, 일본의 야심은 조선을 향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조선은 청나라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 있었죠. 일본은 조선 내 급진개화파였던 김옥균 세력과 손잡고 갑신정변을 일으켜 청나라를 몰아내려 했지만, 청나라의 군사적 개입으로 ‘3일 천하’로 막을 내립니다. 이후 두 나라는 ‘텐진 조약’을 맺어 조선에서 군대를 함께 철수하고, 향후 파병 시 서로에게 알리기로 약속합니다. 10년 뒤, 조선에서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자 조선 정부는 청나라에 지원을 요청했고, 텐진 조약에 따라 일본군도 한반도에 발을 들입니다. 하지만 일본의 진짜 속셈은 따로 있었습니다. 농민군이 정부와 화해하고 반란이 끝나자, 청나라는 조약에 따라 철수하려 했지만 일본은 군대를 물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조선의 내정 개혁을 돕겠다”는 명분으로 경복궁을 점령하고 친일 내각을 세워버렸죠. 이것이 바로 갑오개혁입니다. 조선을 장악한 일본은 명분 없는 선전포고로 청나라 군대를 기습 공격하며 청일전쟁을 일으켰고, 이 전쟁에서 승리하며 아시아의 맹주 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시모노세키 조약을 통해 일본은 막대한 전쟁 배상금과 함께 대만까지 손에 넣었고, 아시아의 질서는 중국 중심에서 일본 중심으로 완전히 재편되었습니다.

3. 상처의 시대: 군국주의와 중일전쟁의 비극
청일전쟁의 승리로 제국주의 열강 반열에 오른 일본은 끝없는 팽창의 길을 걷습니다. 세계 대공황으로 경제가 어려워지자 일본 내에서는 군국주의가 급부상했고, 군부는 정부의 통제를 벗어나 독단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1931년, 일본 관동군은 스스로 철도를 폭파하고 이를 중국군의 소행이라며 뒤집어씌워 만주를 침략했습니다. 이른바 ‘만주사변’이죠. 군부의 폭주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1937년, 또다시 ‘실종된 일본군 병사 한 명’을 빌미로 중국을 침략하며 중일전쟁의 서막을 엽니다. 당시 중국은 국민당과 공산당의 내전으로 분열되어 있었지만, 일본이라는 거대한 외세의 침략 앞에 극적으로 손을 잡고(제2차 국공합작) 맹렬히 저항했습니다. 전쟁은 장기화되었고, 이 과정에서 일본은 난징 대학살, 731부대의 생체 실험 등 인류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전쟁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이 시기의 참혹한 비극은 오늘날까지도 중국인들의 가슴 속에 깊은 상처로 남아있습니다.

4. 냉전 속 실리 외교와 잠재된 갈등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하고, 중국 대륙에는 공산당 정권이 들어서면서 두 나라의 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습니다. 냉전 시대가 개막하자 일본은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자유주의 진영에 섰고, 자연스레 공산당의 중화인민공화국이 아닌 대만의 중화민국과 수교했습니다. 하지만 1970년대, 미국과 중국이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손을 잡는 ‘핑퐁 외교’가 펼쳐지자 일본은 국제 무대에서 고립될 것을 우려해 서둘러 중국과의 관계 정상화에 나섭니다. 당시 중국은 전쟁 배상금을 포기하는 파격적인 제안을 합니다. 대신 일본은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을 유일한 합법 정부로 인정해야 했습니다. 중국은 배상금보다 국제 사회에서의 지지와 일본의 경제 투자가 장기적으로 더 큰 이득이라 판단했고, 양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약 30년간 비교적 평화로운 관계가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과거사를 완전히 해결한 화해가 아닌, 현실적인 이익을 위한 ‘미봉책’에 가까웠습니다.

5. 뒤틀린 관계의 서막: 일본의 우경화와 중국의 부상
평화로워 보였던 관계는 1990년대부터 다시 삐걱거리기 시작합니다. 80년대 버블 경제의 붕괴로 ‘잃어버린 10년’을 맞이한 일본 사회는 과거의 영광에 집착하며 우경화의 길로 들어섭니다. 정치인들은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고, 교과서에서 침략의 역사를 축소하며 주변국의 상처를 헤집었습니다. 바로 그 시기, 중국은 개혁개방 정책에 힘입어 무서운 속도로 성장했고, 2010년에는 마침내 일본의 GDP를 추월하며 아시아의 경제 패권을 되찾아옵니다. 힘의 균형이 역전되자 중국은 더 이상 과거처럼 일본에 저자세로 나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내부의 불만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 ‘반일 감정’을 통치 수단으로 활용하기 시작했죠. 역사를 잊은 일본의 세대와, 맞은 역사를 잊을 수 없는 중국의 세대가 양산되면서 양국 국민들의 감정의 골은 더욱 깊어져만 갔습니다.

6. 현재 진행형 갈등: 대만 문제와 끝나지 않은 패권 경쟁
오늘날 중일 갈등은 과거사와 영토 분쟁을 넘어, 첨단 기술과 군사 안보 문제로까지 확전되었습니다.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를 둘러싼 영유권 분쟁,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둘러싼 외교전, 그리고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규제에 일본이 동참하는 등 갈등은 복합적인 양상을 띠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폭발력이 큰 뇌관은 단연 ‘대만 문제’입니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일본은 바로 코앞에 중국의 군사적 위협을 마주하게 되며, 에너지 수입의 핵심 통로인 대만 해협이 막힐 수 있습니다. 일본이 “대만의 위기는 곧 일본의 위기”라며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입니다. 미국 또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의 군비 증강을 용인하고 있으며, 이는 다시 중국을 자극하는 악순환을 낳고 있습니다. 결국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얽히고설킨 두 나라의 관계는 역사적 앙금, 민족주의, 그리고 지정학적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뒤섞여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안갯속을 헤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