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론: 단순한 스포츠 그 이상, 일본의 국민 스포츠 스모의 세계
과거 우리나라의 명절을 뜨겁게 달구었던 씨름처럼, 일본에는 현재까지도 국민적인 사랑을 받는 국기(國技), 스모가 있습니다.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 스모 선수, 즉 ‘리키시’는 대중의 스타로 군림하며 엄청난 인기를 누립니다. 특히 씨름의 ‘천하장사’에 해당하는 최고 등급 ‘요코즈나’가 되면 그 위상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한 달 월급만 3,000만 엔(약 3억 원)에 달하며, 이는 대기업 사장급의 대우입니다. 하지만 요코즈나의 자리는 단 한 번의 우승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수년간의 경기 성적과 승률을 종합적으로 평가받아 협회의 심사를 통과해야만 오를 수 있는 명예의 전당이죠. 또한, 그 자리에 걸맞은 압도적인 실력을 꾸준히 증명해야 하며, 승률이 떨어지면 규정 없이도 암묵적인 압박 속에서 스스로 은퇴를 선택해야 하는 무거운 책임감을 지닌 자리이기도 합니다.

신화에서 무사의 결투까지, 스모에 깃든 유구한 역사
스모의 역사는 일본의 건국 신화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일본 최초의 역사서인 ‘고사기’와 ‘일본서기’ 첫머리에는 신들이 힘을 겨루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것이 바로 스모의 원형으로 여겨집니다. 고대 농경 사회에서는 한 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신성한 의식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마을을 대표하는 선수들이 스모를 벌여, 이기면 풍년, 지면 흉년이 든다고 믿었기에 선수들은 마을 전체의 운명을 짊어지고 경기에 임해야 했습니다. 이후 700년간 이어진 무사 시대에는 스모가 무사의 싸움을 축소해 놓은 형태로 발전했습니다. 체급 구분 없는 무제한급 경기, 단 한 판으로 승부를 가르는 단판승부제, 그리고 씨름판인 ‘도효’ 밖으로 밀려나면 즉시 패배로 인정되는 규칙 등은 전장에서 물러설 곳 없는 무사의 비정한 결투를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한번 패배하면 다음은 없다는 냉혹한 현실이 스모의 규칙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씨름, 신과 공동체를 위한 ‘히토리즈모’
스모의 세계에는 두 선수가 아닌, 혼자서 하는 스모 ‘히토리즈모(一人相撲)’라는 특별한 의식이 존재합니다. 이는 스모가 본래 신을 즐겁게 하기 위한 제의였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입니다. 축제와 같은 이벤트에서 최고 등급의 요코즈나가 도효에 올라 보이지 않는 상대, 즉 ‘신’과 스모를 벌입니다. 이 경기의 승패는 어떻게 될까요? 당연히 요코즈나가 집니다. 인간이 감히 신을 이길 수 없다는 믿음 아래, 요코즈나는 최선을 다해 싸우는 시늉을 하다가 결국 신의 힘 앞에 패배하는 연기를 펼칩니다. 이를 통해 신을 즐겁게 하고, 그 지역 사회의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스모는 단순한 힘겨루기를 넘어, 공동체의 평화를 위한 신성한 약속이자 일본 문화의 정신적 뿌리와 깊게 맞닿아 있습니다.

일본 사회의 축소판: ‘화(和)’ 문화와 장인 정신의 비밀
스모에 담긴 공동체 의식은 일본 사회를 관통하는 핵심 가치인 ‘화(和) 문화’와 직결됩니다. ‘화’는 개인보다 집단의 조화와 질서를 우선시하는 정신을 의미합니다. 섬나라라는 지리적 특성상 도망갈 곳이 없었던 일본인들은 공동체 안에서 조화를 이루며 살아남는 법을 터득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문화는 수백 년, 심지어 천 년을 이어오는 일본의 ‘장인(匠人) 정신’을 탄생시킨 배경이기도 합니다. 한 집안이 대대로 두부 가게를 운영하면, 공동체 사람들은 그 가게의 두부를 사 먹으며 가게의 생계를 책임져 줍니다. 반대로 가게 주인은 공동체를 위해 최고의 두부를 만드는 것을 자신의 역할이자 사명으로 여깁니다. 각자가 자신의 자리에서 맡은 바를 충실히 이행하며 공동체라는 거대한 톱니바퀴의 일부가 되는 것, 이것이 바로 ‘화’ 문화의 본질입니다. 공동체의 질서를 깨는 사람은 ‘무라하치부’라는 이름의 집단 따돌림을 통해 배제될 만큼, 이들에게 조화는 생존과 직결된 중요한 가치였습니다.

결론: 스모 한 판에 담긴 일본의 정신
결론적으로 스모는 단순한 스포츠 경기가 아니라 일본의 역사, 신앙, 사회적 가치가 응축된 하나의 문화적 상징입니다. 도효 위에서 펼쳐지는 리키시들의 격렬한 몸싸움 속에는 신에 대한 경외심, 공동체의 안녕을 기원하는 마음, 그리고 집단의 조화를 위해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는 일본 특유의 ‘화(和)’ 문화가 깃들어 있습니다. 따라서 스모 한 판을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일본이라는 사회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힘과 정신을 엿보는 것과 같습니다. 스모는 과거와 현재를 잇고, 개인과 공동체를 묶어주는 살아있는 역사 그 자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