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막: 모든 것의 시작, 9.11 테러
2001년 9월 11일, 전 세계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무장 조직 알카에다가 납치한 비행기들이 뉴욕의 세계무역센터와 워싱턴 D.C.의 펜타곤에 충돌한 것입니다. 이 사건으로 하루아침에 약 3,000명의 무고한 생명이 희생되었고, 미국 본토가 공격받았다는 사실은 미국인들에게 엄청난 충격과 분노를 안겨주었습니다. 이 테러의 배후에는 ‘오사마 빈라덴’이 있었습니다. 그는 과거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당시 미국과 협력하기도 했지만, 걸프전 이후 미군이 이슬람의 성지 메카가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에 주둔하고, 미국이 중동 문제에서 이스라엘의 편을 드는 것에 강한 반감을 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반감이 결국 끔찍한 테러로 이어진 것입니다.

10년의 추적: 기나긴 수색과 놓쳐버린 기회들
9.11 테러 직후,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합니다. 알카에다의 본거지이자 그들을 비호하던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서였죠. 놀랍게도 작전 초기,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의 산악지대 ‘토라보라’에서 빈라덴의 위치를 파악하는 결정적인 기회를 잡습니다. 하지만 현지 동맹 부족의 비협조와 미군 병력 부족, 그리고 당시 미국 행정부가 아프가니스탄보다 이라크 침공에 더 큰 관심을 두는 전략적 실수로 인해 그를 놓치고 맙니다. 이후 빈라덴은 10년 가까이 미국의 추적을 피해 숨어 지냅니다. 아프가니스탄의 험준한 지형, 복잡하게 얽힌 부족 사회, 그리고 그를 영웅시하는 현지 세력들 덕분에 그의 행방은 묘연해졌습니다.

결정적 단서: 한 명의 전령을 추적하다
기나긴 추적은 한 인물의 체포로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북아프리카에서 체포된 알카에다 조직원이 혹독한 심문 끝에 빈라덴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핵심 전령 ‘아부 아흐마드’의 존재를 실토한 것입니다. CIA는 모든 정보력을 동원해 그의 전화를 도청했고, 마침내 그가 파키스탄의 아보타바드 지역에 있는 한 저택을 계속 드나드는 것을 포착합니다. 이 저택은 여러모로 수상했습니다. 주변 집들보다 유난히 높은 5미터짜리 담벼락, 외부와 통신한 기록이 전혀 없다는 점, 심지어 쓰레기조차 밖으로 배출하지 않고 내부에서 소각하는 등 극도로 폐쇄적인 생활 패턴을 보였죠. 위성으로 집을 관찰하던 CIA는 마당을 어슬렁거리는 한 남자를 발견했고, 그림자로 키를 분석한 결과 빈라덴의 키와 거의 일치한다는 사실을 알아냅니다. 10년간의 추적이 드디어 끝을 보이기 시작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날: 어둠 속의 기습, 넵튠 스피어 작전
빈라덴의 은신처라는 확신이 서자, 미국은 극비리에 ‘넵튠 스피어(Neptune Spear)’ 작전을 준비합니다. 최정예 특수부대인 ‘네이비실 6팀(SEAL Team Six)’을 위해 실제 저택과 똑같은 모의 훈련장을 지어 수 주간 강도 높은 훈련을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2011년 5월 2일, 오바마 대통령의 최종 승인하에 작전이 시작됩니다.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스텔스 헬리콥터 두 대가 파키스탄 영공에 침투해 저택으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작전은 시작부터 위기를 맞습니다. 헬기 한 대가 착륙 중 예상치 못한 돌풍으로 추락한 것입니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고, 대원들은 신속하게 저택에 침투했습니다. 치열한 교전 끝에 전령 아부 아흐마드와 빈라덴의 아들을 제압하고, 마침내 3층에서 오사마 빈라덴을 발견하여 사살하는 데 성공합니다.

작전 이후: 역사의 한 페이지가 넘어가다
빈라덴의 시신은 DNA 대조를 통해 신원이 최종 확인되었습니다. 미국은 그의 무덤이 추종자들의 성지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이슬람 율법에 따라 장례를 치른 후 인도양 한가운데에 수장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 작전은 파키스탄의 주권을 침해한 군사 작전이었기에 외교적 마찰을 빚기도 했지만, 9.11 테러의 주범을 처단했다는 명분 앞에 큰 문제로 번지지는 않았습니다. 10년간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했던 테러의 상징이 사라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어떤 명분을 내세운 폭력도 결국에는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역사의 교훈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