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호와 눈물 속의 궐석재판, 비극의 시작
방글라데시의 수도 다카, 한 법정 안이 방청객들의 환호와 눈물로 가득 찹니다. 1년을 기다려온 판결이 마침내 선고되는 순간, 사람들은 감격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사형’이라는 무거운 판결을 받은 당사자는 그 자리에 없었죠. 재판의 주인공은 바로 방글라데시의 전직 최고 지도자, 셰이크 하시나 전 총리였습니다. 한때 20년 이상 국가를 통치하며 막강한 권력을 누렸던 그녀가 어떻게 국민적 지지를 잃고 궐석재판에서 사형 선고를 받게 되었을까요? 이 모든 것의 시작은 지난해 여름 방글라데시를 휩쓴 ‘몬순 혁명’이었습니다.

민주화의 영웅에서 독재의 그림자로
셰이크 하시나는 ‘독립 영웅’의 딸로, 한때는 민주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었습니다. 군부 쿠데타로 아버지를 잃고 망명 생활을 하는 등 비극적인 개인사를 딛고 일어나, 1996년 마침내 총리 자리에 올랐죠. 집권 초기, 그녀는 민주적이고 인도주의적인 정책으로 많은 지지를 받았습니다. 미얀마에서 탄압받던 로힝야 난민 70만 명을 받아들이고,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을 몰아냈습니다. 또한, 세계 최빈국이었던 방글라데시의 1인당 GDP를 세 배 가까이 끌어올리고, 고질적인 전력난을 해결하며 대형 인프라를 구축하는 등 놀라운 경제 발전을 이끌었습니다. 하지만 4연임에 성공하며 장기 집권의 길로 들어서면서 그녀는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언론을 통제하고, 정적을 탄압했으며, 심지어 총선을 앞두고 야당 관계자 2만 명을 체포하는 등 점차 독재자의 길을 걸었습니다. 독재 세력의 핍박을 받았던 그녀가 똑같이 변해버린 모습에 많은 국민들이 분노하기 시작했습니다.

내로남불과 부패, 민심에 불을 붙이다
하시나 정권에 대한 분노가 임계점에 다다른 것은 연이어 터진 부패 스캔들과 불공정한 정책 때문이었습니다. 전직 경찰청장을 비롯한 최측근들의 비리가 드러났고, 심지어 전 가사도우미가 470억 원이라는 상식 밖의 재산을 모은 사실이 알려지며 국민적 공분을 샀습니다. 결정적으로 민심에 불을 붙인 것은 ‘공직 할당제 부활’이었습니다. 독립 유공자 자녀에게 공직의 30%를 할당한다는 이 정책은, 이미 하시나의 장기 집권 기간 동안 기득권이 된 독립 유공자 후손들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명백한 ‘내로남불’이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경제난이 심화된 상황에서, 대학을 졸업해도 양질의 일자리를 찾기 힘든 청년들에게 이 소식은 절망과 분노를 안겨주기에 충분했습니다.

몬순 혁명, 그 후의 방글라데시
결국 2023년 7월, 하시나의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 ‘몬순 혁명’이 시작되었습니다. 군경의 강경 진압으로 1,4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지만, 분노한 민심은 꺾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하시나는 총리직에서 물러나 헬리콥터를 타고 인도로 망명했습니다. 이후 방글라데시에서는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무함마드 유누스가 이끄는 과도정부가 들어서 혼란을 수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시나의 사형 선고 이후에도 방글라데시 내부는 여전히 찬반 여론으로 뜨겁습니다. 그녀가 이룬 경제 성과를 기억하는 지지층이 약 35\~40%에 달하기 때문입니다. 인도로 망명한 하시나는 여전히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총선 보이콧을 촉구하며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어, 방글라데시의 미래는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입니다.

방글라데시의 미래, 우리에게도 중요한 이유
우리에게는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방글라데시의 정치 상황은 우리가 주목해야 할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방글라데시는 남아시아와 중동을 잇는 전략적 요충지, 이른바 ‘브릿지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면서 기존의 친인도 노선에서 벗어나 외교 다변화를 꾀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여러 국가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혼란을 극복하고 다시 민주주의의 꽃을 피울 수 있을지, 방글라데시의 미래를 함께 지켜봐야 할 이유입니다. 과연 방글라데시는 어떤 길을 걷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