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론: 자동차 엠블럼 너머, 숨겨진 지배자를 만나다
고속도로 위를 질주하는 자동차의 행렬. 우리의 눈은 자연스레 현대, 기아, 테슬라와 같은 익숙한 엠블럼으로 향합니다. 하지만 자동차의 심장부인 보닛을 열어보면, 이들보다 더 자주 마주치는 이름이 있습니다. 바로 터보차저부터 전기 모터, 사륜구동 장치까지, 자동차를 움직이는 핵심 부품을 만드는 기업, ‘보그워너(BorgWarner, 티커: BWA)’입니다. 130년 넘게 오직 ‘파워트레인’이라는 한 우물을 파 온 이 숨은 강자의 이야기는, 거대한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 전환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1. ‘터보차저의 왕’, 엔진의 시대가 저물다
보그워너의 과거 별명은 단순하고 명확했습니다. 바로 ‘터보차저의 왕’. 강력한 내연기관의 상징인 터보차저 시장을 지배하며 막대한 부를 쌓았습니다. 하지만 전기차의 등장과 함께 세상은 바뀌었습니다. 강력한 환경 규제 속에서 엔진이라는 거대한 심장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엔진으로 돈을 벌던 회사는, 엔진이 사라지면 함께 사라지는 것일까?’ 이 질문에 보그워너는 단호하게 ‘아니오’라고 답합니다.

2. 대담한 선언: 우리는 엔진이 아닌 ‘파워트레인’ 회사다
보그워너는 ‘Charging Forward 2027’이라는 전동화 로드맵을 통해 미래를 향한 청사진을 제시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사업을 명확히 두 갈래로 나누었습니다. 하나는 터보차저, AWD 시스템 등 여전히 돈을 잘 버는 내연기관 및 하이브리드용 ‘기반 사업(Foundational Products)’입니다. 다른 하나는 전기차의 심장인 e모터, 인버터, 통합 구동 모듈(IDM), 배터리 팩, DC 고속 충전기 등을 아우르는 ‘e프로덕트(eProducts)’입니다. 2027년까지 e프로덕트 매출을 100억 달러 이상으로 키워 전체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게 만들겠다는 야심 찬 목표입니다. 이를 위해 2023년에는 내연기관 연료 시스템 사업부를 과감히 분사하며 전동화에 모든 것을 걸겠다는 의지를 시장에 분명히 보여주었습니다.

3. 숫자로 증명되는 전환: 중국 시장 석권과 인프라 확장
이러한 전략은 단순한 선언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전동화의 격전지인 중국 시장에서 그레이트월, 체리 등 주요 자동차 제조사들과 e모터, 듀얼 인버터, IDM 공급 계약을 연이어 따내며 실질적인 성과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또한, 상용차와 버스를 위한 DC 고속 충전기와 배터리 열 관리 시스템까지 사업을 확장하며, 차량 내부의 부품을 넘어 충전 인프라라는 더 큰 생태계에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비록 2024년 전체 매출은 소폭 감소했지만, 수익성을 나타내는 조정 영업 이익률은 10%를 넘겼고, 현금 창출 능력은 오히려 크게 개선되며 내실 있는 성장을 증명했습니다.

4. 미래를 향한 질주: 기회와 리스크, 그리고 현명한 관찰
보그워너의 가장 큰 강점은 유연성입니다. 내연기관 시대가 예상보다 길어져도, 하이브리드가 대세가 되어도, 완전 전기차 시대가 와도 모두 대응할 수 있는 포트폴리오를 갖추고 있습니다. 탄탄한 현금 흐름과 재무 체력은 이러한 전환기에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줍니다. 물론 전기차 수요의 변동성, 치열한 기술 경쟁과 같은 리스크도 분명 존재합니다. 하지만 보그워너는 엔진 시대의 강자가 다가오는 전기차 시대의 핵심 플레이어로 거듭나기 위해 가장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기업 중 하나임이 틀림없습니다. 터보차저의 굉음이 전기 모터의 정숙함으로 바뀌는 지금, 우리는 한 거인 기업의 대담한 변신을 흥미롭게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