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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문화/취미 / 사회

2000년 전 로마의 편의점, ‘테르모폴리움’: 고대 로마인들은 왜 집밥 대신 외식을 했을까?

작성자 mummer · 2025-12-05

서론: 모든 길은 로마로, 모든 배고픔은 이곳으로

서론: 모든 길은 로마로, 모든 배고픔은 이곳으로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로마의 심장부에서 꿈틀대던 서민들의 배고픔과 가난, 정치적 불만과 은밀한 뒷이야기들은 모두 어디로 향했을까요? 놀랍게도 그 모든 것은 ‘테르모폴리움(Thermopolium)’이라 불리는 작은 가게로 모였습니다. 고대 로마의 일상을 지탱했던 특별한 공간, 테르모폴리움의 문을 함께 열어보시죠.

1. 고대 로마의 부엌, 테르모폴리움의 등장 배경

1. 고대 로마의 부엌, 테르모폴리움의 등장 배경

테르모폴리움은 ‘뜨거운 것을 파는 장소’라는 뜻으로, 오늘날의 편의점이나 패스트푸드점과 매우 유사한 곳이었습니다. 당시 로마 서민 대다수는 ‘인슐라’라는 공동주택에 거주했는데, 이곳은 화재에 극도로 취약한 목조 건물이었습니다. 만약 개인이 좁은 방에서 불을 피워 요리하다가 불씨라도 튀면, 도시 전체를 위협하는 대형 화재로 번질 수 있었습니다. 또한, 매 끼니를 위해 장작을 사고 연기를 참아가며 요리하는 것은 경제적으로도 비효율적이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한 번에 많은 양의 음식을 조리해 저렴하고 따뜻한 식사를 제공했던 테르모폴리움은 로마의 노동 계층에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공간이었습니다. 로마인들이 특별히 외식을 즐겼다기보다는, ‘집밥’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기에 자연스럽게 발길이 향했던 것입니다. 이는 현대 사회의 1인 가구가 직접 요리하는 것보다 간편식을 사 먹는 것이 더 경제적인 현상과 놀랍도록 닮아있습니다.

2. 로마 서민들은 무엇을 먹고 마셨을까?

2. 로마 서민들은 무엇을 먹고 마셨을까?

테르모폴리움의 주메뉴는 무엇이었을까요? 콩이나 곡물 요리에 로마인의 ‘국민 소스’였던 생선 젓갈 ‘가룸(Garum)’을 곁들인 음식이 일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2020년 폼페이 유적에서 발굴된 한 테르모폴리움의 항아리 속에서는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오리, 염소, 돼지, 생선, 심지어 달팽이 뼈까지 뒤섞인 채 발견된 것입니다. 이는 여러 재료를 함께 끓여낸, 마치 현대의 부대찌개나 파에야와 유사한 형태의 ‘혼합 요리’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입니다. 물론, 로마의 편의점답게 와인을 파는 술집 역할도 겸했습니다. 특히 겨울철에는 와인에 뜨거운 물을 섞어 만든 ‘칼리다(Calida)’라는 따뜻한 음료가 인기 만점이었습니다. 일회용 용기가 없던 시절이라, 손님들은 음식을 담아 가기 위해 개인 그릇을 챙겨 와야 했다는 점도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3. 단순한 식당을 넘어선 사교와 정치의 중심지

3. 단순한 식당을 넘어선 사교와 정치의 중심지

대부분의 테르모폴리움은 공간이 협소하여, 손님들은 L자형 석재 카운터에 기대어 서서 간단히 식사를 해결하는 ‘스탠딩 바’ 형태가 일반적이었습니다. 이곳의 주된 고객은 자신만의 주방을 가질 수 없었던 인슐라의 도시 서민, 해방 노예, 그리고 여행자들이었습니다. 부유층은 저택에서 노예가 만든 요리를 즐겼기에 이곳을 찾을 이유가 없었죠. 자연스럽게 테르모폴리움은 서민들의 커뮤니티 공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사람들은 이곳에 모여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었고, 때로는 정치적 여론의 중심지가 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폼페이 유적의 테르모폴리움 외벽에서는 당시의 지방 선거 포스터가 발견되어, 이곳이 얼마나 활발한 소통의 장이었는지를 생생하게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4. 욕망과 규제가 충돌하던 사회의 최전선

4. 욕망과 규제가 충돌하던 사회의 최전선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언제나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는 법. 테르모폴리움 역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이곳에서는 종종 도박판이 벌어졌고, 일부 가게는 2층 객실이나 뒷방에서 은밀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장소로 이용되었다는 기록도 남아있습니다. 이러한 음성적인 서비스는 당시 술집이나 여관 등에서 매우 흔한 일이었고, 술을 시키면 안주가 나오듯 자연스러운 옵션처럼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로마의 황제들은 테르모폴리움을 끊임없이 규제하고 단속하려 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공중도덕을 바로잡기 위함만이 아니었습니다. 서민들이 한데 모여 술을 마시며 나누는 불만 섞인 대화가 자칫 반란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정치적 계산도 깔려 있었죠. 하지만 수많은 금지령에도 불구하고 테르모폴리움은 끈질기게 살아남았습니다. 이곳은 제국의 규제와 서민들의 기본적인 욕망이 가장 치열하게 충돌하는 사회적 최전선이었던 셈입니다.

결론: 2000년을 뛰어넘는 따뜻한 온기 한 그릇

결론: 2000년을 뛰어넘는 따뜻한 온기 한 그릇

200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오늘날 우리 역시 지친 하루 끝에 집밥을 대신할 도시락과 컵라면을 찾아 편의점으로 향합니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했던 것은 단순히 배를 채울 음식을 넘어, 고된 일상 속에서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작은 공간과 따뜻한 온기였을지도 모릅니다. 테르모폴리움은 주방이 없던 로마 서민들의 공용 부엌이자, 고단한 하루를 버티게 해준 위로의 공간이었습니다. 시대는 변했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과 그들에게 필요한 작은 온기 하나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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