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론: 승자와 패자, 당신은 어디에 서 있습니까?
한때 일본의 뉴스에서는 ‘승자(勝ち組)’와 ‘패자(負け組)’라는 단어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등장했습니다. 누군가는 도쿄의 고층 빌딩 유리창 너머로 화려한 도시의 불빛을 내려다볼 때, 다른 누군가는 그 불빛 아래 편의점에서 시급을 받으며 하루하루를 버텨냈습니다. 이처럼 회복의 기회를 잡은 소수와 끝없이 뒤처진 다수가 공존하는 사회. 오늘의 주제는 바로 이 불균형의 시대를 관통하는 키워드, ‘격차 사회’입니다. 일본의 과거를 통해 오늘날 우리 사회를 비추어보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1. 2006년 일본, ‘격차 사회’라는 유령의 등장
2000년대 중반, 일본 경제는 긴 불황의 터널을 지나 성장률이 회복되는 등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리는 듯 보였습니다. 도요타 같은 대기업들은 사상 최대 실적을 발표하며 장밋빛 전망을 내놓았죠. 하지만 그 온기는 일부에게만 닿는 그들만의 이야기였습니다. 거시 경제 지표는 회복됐지만, 서민들의 삶은 여전히 꽁꽁 얼어붙어 있었습니다. 당시 일본 전체 근로자의 33%가 비정규직이었고, 청년층은 절반 가까이가 계약직이나 파견직으로 내몰렸습니다. 같은 사무실에서 일해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는 두 배 가까이 벌어졌고, 한쪽은 정년을 보장받을 때 다른 한쪽은 ‘계약 만료’라는 불안감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사람들은 이것이 더 이상 개인의 능력이 아닌 ‘구조의 문제’이며, 노력만으로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한다고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격차 사회’라는 말이 폭발적으로 퍼져나가며 시대의 불안을 대변하는 유행어가 되었습니다.

2. 일본의 과거, 한국의 오늘: 놀랍도록 닮은 현실
일본의 이야기는 낯설지 않습니다. 마치 2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지금 한국의 모습을 보는 듯합니다. 우리나라도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본격화된 구조 조정으로 비정규직이 폭발적으로 늘었고, 현재 청년 10명 중 4명은 비정규직 또는 단기 계약직입니다. ‘금수저, 흙수저’, ‘N포세대’와 같은 신조어는 노력만으로 계층 이동이 어렵다는 사회적 좌절감을 담고 있죠. 실제로 지표를 봐도 닮아있습니다. 소득 불평등을 나타내는 지니계수를 보면, 2022년 한국은 0.324로 OECD 평균보다 높습니다. 특히 부동산 가격 급등으로 인한 자산 격차는 더욱 심각해 ‘벼락거지’, ‘영끌’이라는 말이 등장할 정도였죠. 일본이 겪었던 구조적 불안과 그로 인한 사회적 정서가 지금 한국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 셈입니다.

3. 소비의 양극화: ‘절약’과 ‘작은 사치’ 사이에서
깊어진 불평등은 사람들의 소비 습관마저 바꿔놓았습니다. 바로 ‘소비의 양극화’ 현상입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대다수는 허리띠를 졸라매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폭발적으로 성장한 것이 바로 ‘100엔샵’과 저가형 PB(자체 브랜드) 상품입니다. 일상 소비는 철저히 ‘가성비’를 따지며 아끼는 것이죠. 하지만 흥미롭게도 모든 소비를 줄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은 힘든 현실 속에서도 심리적 만족과 보상을 줄 ‘작은 행복’을 찾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등장한 것이 바로 ‘립스틱 효과’입니다. 경기가 어려울수록 립스틱처럼 적은 비용으로 큰 만족감을 주는 제품의 판매가 오히려 늘어나는 현상이죠. 한국의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트렌드처럼, 프리미엄 디저트나 커피, 화장품 등 ‘작은 사치’를 통해 어려운 현실을 견뎌낼 힘을 얻는 것입니다. 소비는 멈추지 않습니다. 다만 그 방향을 바꿀 뿐입니다.

4. 격차 속에서 찾는 새로운 기회
격차 사회는 분명 위기이지만, 동시에 새로운 수요와 기회의 탄생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변화 속에서 투자와 성장의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죠. 크게 두 가지 트렌드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허리띠를 졸라매는 대다수 소비자를 만족시키는 ‘불황형 산업’의 성장입니다. 저가 상품 유통기업, 중고 거래 플랫폼처럼 ‘절약의 미학’을 제시하는 기업들은 구조적으로 성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 ‘보상 심리’를 충족시키는 산업의 부상입니다. 큰 사치를 포기하는 대신, 프리미엄 디저트, 스트리밍 구독 서비스, 모바일 게임, 중저가 화장품처럼 작은 지출로 마음의 균형을 맞추게 해주는 시장이 커지는 것이죠. 또한, 비정규직 청년들의 재취업과 능력 개발을 돕는 재교육, 직업 훈련과 같은 HR 관련 플랫폼 기업들도 격차 사회의 구조적 변화 속에서 수혜를 입으며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변화를 먼저 읽고 대응하는 사람과 기업이 다음 시대의 승자가 된다는 점입니다.

결론: 지금이 균형을 되찾을 마지막 골든타임
‘격차 사회’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현상이 아닙니다. 오랜 시간 동안 정책의 방향, 기업의 선택, 그리고 개인의 결정이 쌓여 만들어진 결과물입니다. 이 말은 곧 지금 우리의 선택이 미래의 격차를 결정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일본의 20년 전 과거가 오늘 우리의 현실이 되었듯, 지금의 현실을 방치한다면 미래는 더욱 깊은 불평등에 직면할지 모릅니다. 불평등을 완전히 없애기는 어렵겠지만, 더 이상 격차가 벌어지지 않도록 사회 전체가 함께 고민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어쩌면 지금이 바로 무너진 균형을 되찾을 수 있는 마지막 ‘골든타임’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