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삼성의 ‘미필 집안’ 징크스를 깬 사진 한 장, 그 중심에 선 그녀
최근 삼성가의 한 손자가 해군 장교로 임관하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바로 삼성을 따라다니던 ‘미필 집안’이라는 꼬리표를 시원하게 떼어낸 상징적인 장면이었죠. 그리고 그 역사적인 현장, 군복 입은 손자를 대견하게 바라보던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바로 고 이건희 회장의 아내이자 이재용 회장의 어머니, 홍라희 여사입니다. 단순히 ‘재벌가 사모님’이라는 말로 설명하기엔 그녀의 인생은 너무나 파란만장합니다. 대한민국 최고 재벌의 며느리에서 미술계의 절대 권력자로, 그리고 아들의 구속 앞에서는 모든 것을 내려놓았던 어머니까지. 오늘은 한국 여성 부호 1위이자 여전히 삼성의 막후 실력자로 불리는 홍라희 여사의 진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2. 판사의 딸, 거인의 며느리가 되다
홍라희 여사는 법무부 장관까지 지낸 엘리트 아버지 홍진기 슬하에서 남부러울 것 없이 자랐습니다. 경기여고를 거쳐 서울대 응용미술과에 진학한 그녀는 유학 후 커리어 우먼이 되겠다는 꿈을 키우고 있었죠. 하지만 아버지와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인연은 그녀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꿉니다. 두 사람의 주선으로 이병철 회장의 셋째 아들, 이건희와 맞선을 보게 된 것입니다. “누구의 며느리 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 내가 선택한 남자를 성공시켜 당당하게 내 이름을 찾고 싶다”며 결혼을 반대했던 그녀의 당돌함은 유명한 일화입니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순 없었고, 결국 1967년 대학 졸업과 동시에 삼성가의 일원이 되며 개인의 꿈을 접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 앞에는 대한민국 미술사를 바꿀 거대한 여정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3. 미술을 향한 열정, 삼성의 안목을 만들다
시아버지 이병철 회장은 며느리의 재능을 한눈에 알아봤습니다. 그는 매일같이 돈을 쥐여주며 인사동에서 골동품을 사 오게 하는 혹독한 실전 훈련으로 며느리의 안목을 키웠습니다. 가짜와 진짜를 구별하고, 가격 대비 가치를 판단하는 ‘이병철식 안목 수업’을 통해 홍라희 여사는 단순한 애호가를 넘어 냉철한 컬렉터로 성장했습니다. 남편 이건희 회장 역시 아내의 열정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며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을 후원하는 등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주었죠. 이러한 노력의 결실이 바로 2004년 개관한 ‘리움 미술관’입니다. 리움 미술관은 삼성가 미술 컬렉션의 결정체이자, 그녀 인생의 역작으로 평가받습니다.

4. 화려함 뒤의 눈물: 어머니 홍라희의 시련
밖에서는 화려한 관장이었지만, 집에서는 이재용, 이부진, 이서현, 故 이윤형 1남 3녀의 어머니였습니다. 그녀는 의외로 ‘방목형’ 교육 철학을 가졌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자식 농사만큼은 돈과 권력으로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장남과 장녀의 이혼, 그리고 20대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막내딸을 가슴에 묻어야 했던 슬픔은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겁니다. 여기에 2008년 비자금 특검과 2017년 아들 이재용 회장의 구속 사태는 그녀에게 감당하기 힘든 시련을 안겼습니다. 결국 그녀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다”며 두 차례나 관장직을 사퇴해야 했습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뒤에 가려진 그녀의 아픔이었습니다.

5. 삼성의 살아있는 역사, 그녀의 이름은 홍라희
남편을 떠나보낸 후 홍라희 여사의 행보는 명확했습니다. 바로 ‘아들 힘 실어주기’였죠. 상속 과정에서 자신의 지분을 상당 부분 포기하며 이재용 회장의 그룹 지배력을 강화해 주었고, 자신은 삼성전자 개인 최대 주주로 올라섰습니다. 이는 삼성의 중대 결정에 그녀의 한 표가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최근 미술관이나 야구장을 찾는 등 소탈한 모습을 보이지만, 그녀는 여전히 삼성이라는 거대한 제국을 지탱하는 가장 묵직한 존재입니다. 50여 년 전, 당당하게 자신의 이름을 찾겠다던 여대생은 이제 누군가의 아내나 어머니를 넘어, 그 자체로 삼성의 역사이자 거대한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그녀의 삶은 ‘안주인’이라는 단어의 진짜 무게를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