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론: 바다를 품고도 생선을 외면한 유럽, 그 역설의 시작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 이름만 들어도 푸른 바다가 눈앞에 펼쳐지는 나라들입니다. 지도를 보면 유럽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그야말로 해양 대륙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식탁을 들여다보면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왜 풍요로운 바다를 옆에 두고도 해산물 요리는 이토록 단조로울까요? 한국의 회, 일본의 스시처럼 다채로운 해산물 문화가 발달한 아시아와 달리, 유럽의 생선 코너는 참치, 연어, 대구 등 몇몇 어종이 전부일 때가 많습니다. 어째서 이런 차이가 생긴 걸까요? 그 답은 단순히 ‘비린내를 싫어해서’라는 표면적인 이유를 넘어, 수천 년에 걸친 지질학적 조건과 역사, 그리고 문화 속에 숨어있습니다. 지금부터 유럽의 식탁에서 생선이 주역이 되지 못한 역설의 역사를 함께 파헤쳐 보겠습니다.

1. 거칠고 메마른 바다: 자연이 만든 첫 번째 장벽
모든 문제의 근원은 바다 그 자체에서 시작됩니다. 유럽 북부의 북대서양은 인류에게 결코 친절한 바다가 아니었습니다. 겨울철 평균 파고가 5미터를 넘고, 폭풍우가 몰아칠 때는 20미터가 넘는 파도가 몰아치는 죽음의 바다였죠. 중세 시대의 나약한 목선으로 이곳에서 조업하는 것은 목숨을 건 도박과 같았습니다. 반면, 남부의 지중해는 평온하고 아름답지만, ‘먹을 것이 없는 바다’입니다. 대서양과 좁은 지브롤터 해협으로만 연결되어 해류 순환이 느리고, 영양분을 공급할 큰 강도 거의 없어 생명체가 자라기 힘든 환경입니다. 결국 유럽의 바다는 어업을 하기엔 너무 위험하거나, 혹은 잡을 물고기가 별로 없는 극단적인 환경이었던 셈입니다.

2. 육지의 풍요와 갯벌의 부재: 바다를 외면하게 된 이유
유럽이 바다를 외면한 또 다른 이유는 육지에 있었습니다. 유럽은 비옥한 평야가 넓게 펼쳐진 대륙형 문명으로, 목축업이 크게 발달했습니다. 굳이 위험한 바다에 나가지 않아도 육지에서 안정적으로 고기와 유제품을 얻을 수 있었죠. 육지의 풍요는 바다의 가치를 상대적으로 떨어뜨렸습니다. 더욱이 동아시아와 달리 유럽 해안에는 ‘바다의 인큐베이터’라 불리는 갯벌이 거의 없습니다. 갯벌은 수많은 해양 생물이 자라나는 생태계의 시작점인데, 이 갯벌의 부재는 해산물의 다양성을 근본적으로 제한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풍요로운 육지와 빈약한 해안 환경, 이 두 가지 조건은 유럽인들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바다가 아닌 땅으로 향하게 했습니다.

3. 비린내의 과학과 종교가 새긴 낙인
유럽인들이 생선을 기피하는 이유로 흔히 ‘비린내’를 꼽습니다. 여기에는 과학적인 근거가 있습니다. 차갑고 염도가 높은 유럽 바다의 물고기들은 세포를 보호하기 위해 ‘TMAO’라는 화학 물질을 다량 함유하고 있습니다. 이 물질이 분해되면서 나는 강력한 비린내가 바로 유럽 생선의 특징이었죠. 냉장 기술이 없던 과거에는 이 냄새를 잡는 것이 큰 과제였습니다. 여기에 종교적 요인이 더해집니다. 중세 가톨릭 사회에서는 금요일과 사순절에 육식을 금지했고, 사람들은 고기 대신 생선을 먹어야 했습니다. 이때 생선은 즐거움을 주는 음식이 아닌, 의무감으로 먹는 ‘대체재’이자 절제와 가난의 상징이었습니다. ‘고기는 축제의 음식, 생선은 고난의 음식’이라는 문화적 인식이 수백 년간 이어지며 생선은 자연스럽게 식탁의 중심에서 밀려나게 된 것입니다.

결론: 접시 위에 담긴 문명과 역사의 선택
결론적으로 유럽의 식탁은 거친 자연환경, 풍요로운 육지라는 대안, 그리고 종교와 계급이 만든 문화적 유산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물입니다. 그들은 바다를 건너 세계를 지배했지만, 정작 그들의 식탁은 육지의 풍요에 만족하며 바다와는 거리를 두게 되었습니다. 반면, 얕고 풍요로운 바다를 가졌던 아시아는 바다의 다양성을 식탁 위로 고스란히 옮겨왔습니다. 오늘 당신의 식탁에 오른 음식은 단순한 한 끼 식사가 아닙니다. 그 안에는 수천 년의 역사와 자연, 그리고 문명이 내린 위대한 선택이 담겨 있습니다. 유럽이 잊은 바다의 맛을, 우리는 매일의 식사를 통해 기억하고 있는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