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어가며: 일본 사회의 그림자, ‘원조교제’는 왜 사라지지 않을까?
보수적이고 타인의 시선을 극도로 의식하는 사회, 바로 일본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원조교제(엔조코사이)’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곳 역시 일본입니다. 돈을 목적으로 나이 차이가 나는 상대를 만나는 이 현상은 단순히 일부의 일탈이 아닌, 지난 30년간 일본 사회의 경제적, 구조적 변화와 함께 진화해 온 깊은 그림자입니다. 대체 무엇이 일본을 원조교제의 천국으로 만들었고, 지금은 ‘파파카츠’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여전히 성행하게 하는 걸까요? 그 기나긴 역사의 시작부터 현재까지 함께 따라가 보겠습니다.

1. 버블의 욕망과 붕괴: 원조교제의 시작
1980년대, 일본은 전례 없는 경제 호황, 즉 ‘버블 경제’의 정점에 있었습니다. 소니가 지금의 애플처럼 혁신의 아이콘이었고, 도쿄의 땅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죠. 사회 전체가 명품과 사치에 대한 열망으로 들끓었습니다. 이 시기, 익명으로 남녀를 연결해 주는 ‘테레쿠라(전화방)’와 여학생이 입던 교복이나 속옷을 판매하는 ‘부루세라’ 문화가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이때까지는 일부의 은밀한 유흥에 불과했습니다. 진짜 문제는 1990년대 초 버블이 붕괴하면서 시작됩니다. 중산층이 무너지자 원조교제는 두 갈래로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한쪽은 부모의 용돈이 줄었지만 명품에 대한 눈높이는 그대로였던 10대 소녀들이었고, 다른 한쪽은 ‘취업 빙하기’에 내몰려 생계를 위해 원조교제에 뛰어든 ‘잃어버린 세대’ 청년들이었습니다. 사치를 위한 용돈벌이와 생존을 위한 몸부림, 목적은 달랐지만 모두가 망가진 경제 속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돈을 좇기 시작한 것입니다.

2. 인터넷 시대의 도래: 은밀하게 진화하다
정부가 단속의 칼을 빼 들면서 90년대 후반 ‘테레쿠라’와 ‘부루세라’는 자취를 감추는 듯했습니다. 유명인이나 공무원까지 체포되자 사회적 파장이 컸기 때문이죠. 하지만 원조교제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더 깊고 은밀한 곳으로 숨어들었습니다. 바로 인터넷의 발달이 그들에게 새로운 날개를 달아준 것입니다. 각종 ‘데아이계(만남) 사이트’가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익명성은 더욱 완벽하게 보장되었습니다. 이 시기부터는 청소년보다 성인 간의 원조교제가 주를 이루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법망을 피하기 위해 1회성 만남이 아닌, ‘정기 계약’ 형태의 스폰서 관계가 유행했습니다. 연인처럼 지속적인 만남을 가지며 용돈을 받는 형식이라면 성매매로 처벌하기 애매했기 때문이죠. 겉으로는 사라진 듯 보였던 원조교제는 온라인이라는 새로운 공간에서 더욱 교묘하고 정교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었습니다.

3. ‘파파카츠’의 등장: 풍요 속의 빈곤이 낳은 신조어
시간이 흘러 현재 일본은 ‘취업난’이 아닌 ‘구인난’을 겪고 있습니다. 청년들이 마음만 먹으면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죠. 그렇다면 원조교제도 줄어들었을까요? 놀랍게도 ‘파파카츠(아빠 활동)’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변형되어 오히려 대호황을 맞고 있습니다.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제 문제는 ‘일자리’가 아니라 ‘자산 격차’이기 때문입니다. 버블 시대에 부를 축적한 지금의 60대 이상 세대가 일본 전체 금융 자산의 60% 이상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반면, 지금의 청년들은 취업은 되지만 월급만으로는 자산을 형성하기 불가능한 세대입니다. 물가는 오르는데 실질 임금은 하락했고, 부모 세대마저 ‘잃어버린 세대’라 기댈 곳이 없죠. 결국 청년들은 ‘부업’ 개념으로 파파카츠에 접근하고, 경제적으로 풍족하지만 외로운 중장년층은 고독을 해결하기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엽니다. ‘밥만 먹고 대화만 해도 돈이 된다’는 낮은 진입 장벽은 수많은 청년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4. 해결 불가능한 구조적 딜레마
일본 정부는 왜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걸까요? 사실상 해결이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성인 간의 만남을 ‘데이트’라고 주장하면 법적으로 규제하기 매우 애매합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파파카츠가 세대 간의 극심한 자산 격차와 재분배 실패라는 사회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입니다. 앱을 막는다고 해서 이 문제가 해결될 리 없죠. 역설적으로 파파카츠가 노년층의 자산을 청년층으로 이전하는 기형적인 ‘재분배’ 역할을 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결국 이 문제는 시간이 흘러 부를 가진 세대가 퇴장하고 사회 구조가 완전히 개편되지 않는 한 사라지기 어렵습니다. 일본의 오늘이 한국의 내일이 될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일본의 사례를 통해 우리 사회가 무엇을 대비해야 할지 깊이 고민해 볼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