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론: 식민 지배의 기억, 너무나 다른 두 나라
일본은 한국과 대만, 두 나라를 모두 식민 지배했습니다. 하지만 두 나라의 현재 대일 감정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한국인 상당수가 과거사에 대한 아픔을 기억하는 반면, 대만은 세계적인 친일 국가로 알려져 있죠. 실제로 대만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해외 여행지는 압도적으로 일본이며, 그 인구 대비 방문객 수는 한국과 중국을 훌쩍 뛰어넘습니다. 똑같은 식민 지배를 겪었는데, 어째서 이렇게 다른 반응을 보이는 걸까요?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일본이 두 나라를 어떻게 다르게 다루었는지, 그리고 두 나라가 어떤 다른 길을 걸어왔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1. ‘모델하우스’ 대만 vs ‘병참기지’ 조선
일본에게 대만과 조선은 사용 목적부터 달랐습니다. 대만은 일본의 첫 식민지로, 서구 열강에게 “우리도 식민지배 잘할 수 있다”고 보여주는 ‘모델하우스’ 같은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항만, 철도, 댐 등 대대적인 인프라를 건설하며 근대화에 힘썼죠. 청나라 시절 방치되었던 섬이 눈에 띄게 발전하자, 대만인들은 삶의 질이 향상되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 한반도는 중국 대륙으로 나아가기 위한 ‘군사적 최전선’이자 ‘병참기지’였습니다. 군대가 주둔하며 모든 것을 통제했고, 통치 방식은 훨씬 엄격하고 강압적이었습니다. 대만 총독은 민간인 출신도 있었지만, 조선 총독은 대부분 군인 출신이었다는 점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2. 천년의 정체성 vs 이주민의 섬
지배에 대한 저항 방식도 달랐습니다. 조선은 500년 역사에, 고려까지 합치면 천 년 넘게 단일 국가와 민족 정체성을 유지해온 나라였습니다. ‘한민족, 한 국가’라는 개념이 너무나 강했기에, 외세의 지배에 대한 저항감도 상상 이상으로 거셌죠. 3.1 운동, 임시정부 수립, 끊임없는 무장 투쟁 등 일제에 대한 저항은 끈질기고 타협이 없었습니다. 오직 ‘완전한 독립’만이 목표였습니다. 하지만 대만은 조금 달랐습니다. 수천 년간 제대로 된 국가가 세워진 적이 없었고, 네덜란드, 스페인, 청나라 등 외부 세력의 지배와 이주민의 정착이 반복된 ‘이주민 사회’였죠. 이 때문에 국가적, 민족적 정체성이 상대적으로 약했고, 무력 저항이 한 차례 크게 꺾인 후에는 ‘독립’보다는 ‘자치권’을 요구하는 온건한 방식으로 노선을 바꾸게 됩니다.

3. 일제보다 더했던 국민당의 지배
결정적인 차이는 해방 이후의 역사에서 나타납니다. 한국은 독립을 쟁취하고 우리 손으로 국가를 세우는 길을 걸었습니다. 하지만 대만은 일본이 물러난 자리에 또 다른 외세, 바로 중국 대륙에서 패퇴한 장제스의 ‘국민당’이 들어왔습니다. 국민당 정부는 대만을 본토 수복을 위한 임시 거처로만 여겼습니다. 대만의 자원을 수탈해 전쟁 자금으로 썼고, 뒤늦게 들어온 소수의 외지인(외성인)이 원주민(본성인)을 차별하고 지배 계층으로 군림했습니다. 특히 ‘2.28 사건’과 같은 민간인 대량 학살은 대만인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죠. 무능하고 부패했으며, 폭력적이기까지 한 국민당의 통치를 겪고 나니, 차라리 엄격했지만 유능하고 사회를 발전시켰던 일제 시대가 ‘상대적으로 나았다’는 인식이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4. 결론: 과거의 경험과 현재의 이해관계가 만든 차이
결론적으로 대만이 일본에 우호적인 이유는 복합적입니다. 정리하자면, 1) 조선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화적이었던 일본의 통치 방식, 2) 저항의 강도와 방식의 차이를 낳은 민족 정체성의 차이, 그리고 3) 일본보다 훨씬 가혹했던 국민당의 지배 경험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현재 ‘중국’이라는 공동의 위협에 맞서야 하는 대만과 일본의 지정학적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두 나라의 유대감은 더욱 강해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한 나라에 대한 감정은 단순히 과거의 사실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의 경험과 현재의 상황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