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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AI/IT / 경제 / 사회

엔진이 멈춘 시대: 배달 오토바이부터 할리데이비슨까지, 거대 제국의 붕괴

작성자 mummer · 2025-12-07

도로 위 제국의 몰락: 더 이상 들리지 않는 배기음

도로 위 제국의 몰락: 더 이상 들리지 않는 배기음

혹시 눈치채셨나요? 불과 1\~2년 전만 해도 우리 동네 골목길을 점령했던 날카로운 배기음의 오토바이 행렬이 거짓말처럼 자취를 감췄습니다. 지금 중고 거래 앱을 켜보면 ‘눈물을 머금고 처분합니다’, ‘배달 접고 공장 갑니다’와 같은 절박한 사연과 함께 주인을 잃은 수만 대의 오토바이가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날씨나 일시적인 불경기로 인한 현상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는 한때 도로를 지배했던 거대한 오토바이 제국이 한국의 경제 거품 붕괴, 미국의 문화적 노화, 베트남의 강제적 산업 전환이라는 각기 다른 이유로 동시에 무너져 내리는 역사적인 순간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엔진 소리가 멈춘 그 자리에서 들려오는 시대의 비명을 함께 따라가 보겠습니다.

한국: 꺼져버린 '현금 인출기'의 꿈

한국: 꺼져버린 ‘현금 인출기’의 꿈

2021년,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배달 시장은 유례없는 호황을 맞았고, 오토바이는 ‘달리는 현금 인출기’로 불렸습니다. 너도나도 직장을 그만두고 라이더가 되었고, 중고 오토바이 가격이 신차 가격을 뛰어넘는 기현상까지 벌어졌죠. 하지만 화려했던 파티는 끝났습니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배달 앱 결제 금액은 전년 동기 대비 16.8%나 급감했으며, 이는 집계 시작 이래 가장 큰 감소 폭입니다. 배달 단가는 반 토막 났고, 복잡해진 알고리즘은 라이더들의 수입을 더욱 악화시켰습니다. 결국 작년에만 19,000명의 배달원이 업계를 떠났습니다. 한때 사장님을 꿈꾸며 오토바이에 올랐던 청년들이 이제는 헐값에 오토바이를 처분하고 다시 식당 아르바이트생으로 돌아가는 슬픈 현실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미국: 늙어버린 반항의 상징, 할리 데이비슨

미국: 늙어버린 반항의 상징, 할리 데이비슨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는 ‘자유와 반항의 상징’이었던 전설적인 브랜드 할리 데이비슨이 정체성의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120년 역사를 자랑하는 이 거인은 고객과 함께 늙어버렸습니다. 1990년 평균 32세였던 구매자 연령은 이제 50세를 훌쩍 넘겼습니다. 기존 충성 고객들은 더 이상 400kg에 육박하는 쇳덩이를 감당하기 어려워졌고, 미국의 젊은 세대에게 할리는 ‘기름 냄새나는 꼰대들의 장난감’일 뿐입니다. 위기 탈출을 위해 야심 차게 출시한 전기 오토바이 ‘라이브 와이어’는 전 세계 판매량 33대라는 처참한 실패로 끝났습니다. 할리의 심장인 ‘말발굽 소리’가 사라진 전기 오토바이는 기존 팬들에게 외면받았고, 젊은 층은 “그 돈이면 테슬라를 사겠다”며 비웃었습니다. 할리는 과거의 영광과 미래의 혁신 사이에서 길을 잃고 서서히 침몰하고 있습니다.

베트남: 정부가 주도하는 강제 세대교체

베트남: 정부가 주도하는 강제 세대교체

세계 최대의 오토바이 시장 베트남에서는 국가가 주도하는 거대한 산업 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30년간 시장 점유율 80%를 차지하며 ‘오토바이=혼다’라는 공식을 만들었던 일본 제국에 베트남 정부가 칼을 빼 들었습니다. ‘매연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겠다’는 명분 아래 하노이, 호치민 등 대도시에서 내연기관 오토바이 퇴출을 선언한 것입니다. 일본이 주춤하는 사이, 베트남의 삼성이라 불리는 ‘빈패스트’가 무서운 속도로 전기 오토바이 시장을 장악했습니다. 도시 곳곳에 충전소와 배터리 교체 스테이션을 설치하며 인프라를 선점했고, 그 결과 자국 전기 이륜차 시장의 70%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뒤늦게 혼다가 전기 스쿠터를 내놓았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베트남의 젊은 세대는 더 이상 낡은 엔진 소리가 아닌, 스마트폰과 연동되는 조용한 스마트 모빌리티를 선택하고 있습니다.

엔진 소리가 멈춘 자리, 새로운 시대의 서막

엔진 소리가 멈춘 자리, 새로운 시대의 서막

한국의 생계형 시장 붕괴, 미국의 문화적 아이콘 쇠락, 베트남의 강제적 세대교체. 이 세 가지 현상은 명확하게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알던 시끄럽고 기름 냄새나던 오토바이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륜차라는 이동 수단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동력원이 바뀌고, 문화를 즐기는 방식과 시장을 지배하는 주인이 완전히 달라질 것입니다. 지금 중고 시장에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오토바이는 단순히 주인을 잃은 기계가 아니라, 한 시대가 저물고 있음을 알리는 서글픈 유물일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가장 시끄러웠던 산업이 가장 조용하게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거대한 지각 변동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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