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미국의 상징이 흔들리다: 44년 신화의 균열
‘미국의 힘’ 그 자체를 상징하는 자동차를 꼽으라면 많은 분들이 포드 F-150을 떠올릴 겁니다. 이 거대한 픽업트럭은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미국 중산층의 꿈이자 미국 경제를 떠받치는 기둥으로 여겨져 왔죠. 실제로 1981년부터 무려 44년간 단 한 번도 미국 판매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으며 살아있는 신화를 써 내려왔습니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았던 이 신화에 최근 심상치 않은 균열의 소리가 들려오고 있습니다. 야심 차게 내놓았던 전기 픽업트럭 F-150 라이트닝의 생산량을 절반으로 줄이는가 하면, 재고가 쌓여 공장 가동률을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였습니다. 대체 미국 자동차 시장의 심장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2. 보이지 않는 위협: 2300조 원 자동차 대출 시한폭탄
포드의 위기 뒤에는 훨씬 더 거대하고 위험한 그림자가 숨어있습니다. 바로 2324조 원(1.66조 달러)이라는 천문학적인 규모의 자동차 대출 시장입니다. 최근 발표된 데이터는 미국 가계 경제에 가장 위험한 경고등을 켰습니다. 자동차 대출 연체율이 2010년 금융위기 이후 1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것입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과거에는 저신용자들이 위기의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신용점수 상위 1%의 최우량 고객들마저 대출금을 갚지 못하는 상황이 속출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고금리와 고물가 압박에 월 납입금을 줄이려 7년(84개월)짜리 초장기 할부 상품에 가입하는 사람들이 급증하며, 빚으로 빚을 돌려막는 ‘깡통차 쇼크’가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3. 오만과 안일함이 낳은 비극: 디트로이트는 어쩌다 몰락했나?
이 거대한 몰락은 하루아침에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시계를 2008년으로 돌려보면, 미국 자동차 ‘빅3(GM, 포드, 크라이슬러)’의 CEO들은 회사가 망하게 생겼다며 구제 금융을 요청하러 전용 제트기를 타고 의회에 나타나 국민적 공분을 샀습니다. 이 장면은 현실 감각을 잃어버린 그들의 오만함을 보여주는 상징이었죠. 그들은 위기 속에서도 기술 혁신 대신 법의 허점을 이용하는 쉬운 길을 택했습니다. 연비 규제가 느슨한 트럭과 SUV만 잔뜩 만들어 팔고, 수입 트럭에 25%의 높은 관세를 매기는 ‘치킨세’라는 보호막 뒤에 숨어 안일한 장사를 이어갔습니다. 결국 ‘돈 안 된다’는 이유로 승용차 시장을 포기하는 근시안적인 결정을 내렸고, 그 빈자리는 도요타, 혼다, 그리고 현대기아와 같은 아시아 브랜드들이 차지해버렸습니다.

4. 신뢰의 추락과 우리에게 보내는 경고
더 큰 문제는 안방 시장인 트럭과 SUV에서조차 품질 문제로 소비자의 신뢰를 잃고 있다는 점입니다. ‘미국차는 잔고장이 많다’는 편견은 이제 팩트가 되었고, 포드는 최근 3년 연속 미국에서 가장 많이 리콜된 차량이라는 불명예를 안았습니다. 혁신 대신 단기 이익에만 몰두한 결과, 테슬라가 주도하는 전기차와 소프트웨어 중심의 자동차 시장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습니다. 디트로이트의 비극은 우리에게도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현재의 성공에 안주하고 변화를 두려워한다면, 아무리 큰 기업이라도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냉혹한 현실 말입니다. 지금의 성과에 취해 혁신을 멈춘다면, ‘제2의 디트로이트’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닐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