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론: 핏줄보다 진한 악연, 베트남과 중국
인류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전쟁 중 하나인 베트남 전쟁. 당시 베트남의 든든한 형님이었던 중국은 막대한 물자와 병력을 지원하며 미국에 맞서 싸웠습니다. 같은 공산주의 이념 아래 피를 나눈 듯 협력했던 두 나라, 지금쯤은 굳건한 동맹 관계를 맺고 있어야 할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우리의 상상을 배신합니다. 불과 2017년, 베트남인의 무려 88%가 중국을 부정적으로 인식했으며, 92%는 중국을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위협으로 간주했습니다. 이 놀라운 수치는 한국의 반중 감정 수준을 뛰어넘는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공산주의 동지, 끈끈한 혈맹은 모두 허울 좋은 과거일 뿐입니다. 도대체 베트남은 왜 자신들을 도와줬던, 심지어 같은 이념을 공유하는 중국을 그토록 싫어하는 것일까요? 오늘 우리는 천년을 관통하는 악연과도 같은 베트남과 중국의 기묘하고 복잡한 관계를 심층적으로 파헤쳐 보려 합니다. 단순한 감정이 아닌 역사와 지정학, 그리고 생존의 문제가 얽힌 베트남의 반중 심리, 그 뿌리를 지금부터 함께 따라가 보겠습니다.

천년의 굴레: 베트남 민족 정체성의 뿌리
베트남의 역사는 곧 중국과의 투쟁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기원전 207년 건국된 베트남 최초의 고대국가 ‘남비엣’은 불과 96년 만에 중국 한무제의 침공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고조선을 멸망시킨 한무제는 기원전 111년 남비엣마저 정복하며 베트남 독립의 불씨를 꺼뜨렸죠. 이후 베트남은 무려 천년 동안 중국의 직접적인 지배를 받게 됩니다. 이를 베트남 역사에서는 ‘북속기(北屬期)’, 즉 북방에 속했던 시기라고 부릅니다. 중국은 베트남을 단순한 속국이 아닌 직접적인 식민지로 취급하며 상상을 초월하는 착취와 탄압을 가했습니다. 베트남인에 대한 잔혹한 수탈과 노비화는 물론, 베트남 전통 문화를 파괴하고 중국식 질서를 이식하려 했죠. 이러한 천년간의 압제는 베트남인들에게 중국은 침략자이자 착취자라는 인식을 깊게 심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지옥 같은 압제는 베트남 민족이 중국에 대한 반발심을 동력 삼아 민족 정체성을 천년간 굳건히 유지하게 만든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조공과 배신: 생존을 위한 줄타기 외교
중국의 혼란기였던 서기 939년, 베트남은 응오 꾸엔에 의해 마침내 독립을 쟁취합니다. 그러나 평화는 잠시, 중국이 송나라라는 통일 왕조를 재건하자 베트남은 다시 침략 위기에 직면합니다. 베트남 지도부는 끊임없이 재통일될 중국에 계속 대항하다가는 국력만 소모되어 다시 지배당할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결국 그들은 생존을 위한 어려운 결정을 내립니다. 바로 침공을 피하기 위해 중국의 조공을 바치는 ‘조공-책봉 질서’에 편입되는 길이었습니다. 베트남은 10세기 송나라 때부터 19세기 청나라 말까지 수백 년간 중국의 조공국이 되었죠. 이는 외세의 침공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한 자발적 복종의 형태였습니다. 하지만 베트남의 기대와 달리 중국은 조공을 받으면서도 ‘쿨타임’이 차면 베트남을 침공했습니다. 베트남이 인도차이나 반도 동부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로 성장하여 주변국에 대한 ‘대남제국 질서’를 구축하는 것을 중국이 패권적인 위협으로 느꼈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자신이 가장 큰 땅을 가졌음에도 주변국이 일정 수준 이상 커지는 것을 노이로제급으로 경계했고, 베트남은 이에 대한 거대한 반발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공산 동지의 배신: 베트남 전쟁과 중월전쟁
1950년대, 중국은 베트남의 독립 전쟁과 베트남 전쟁 당시 200억 달러 이상을 원조하고 32만 명의 지원병을 파견하며 ‘형님’ 역할을 자처했습니다. 하지만 관계는 1960년대 후반 중국-소련 갈등 심화로 중국이 소련 견제를 위해 미국과 손을 잡으면서 틀어졌습니다. 1972년 닉슨 미 대통령의 중국 방문은 미국과 전쟁 중이던 베트남에게 큰 배신감으로 다가왔고, 중국은 베트남에게 전쟁 종식을 요구하며 완전 통일 의지를 꺾으려 했습니다. 1975년 통일 직후 중국의 견제가 시작되었고, 베트남이 소련과 밀착하자 중국은 이를 ‘배신’으로 간주했습니다. 결국 1979년, 중국은 베트남이 ‘분수를 모른다’며 중월전쟁을 일으켜 무력으로 징벌하려 했습니다. 이는 ‘베트남은 커지려 하고 중국은 밟으려 하는’ 고대의 역학 관계가 현대에 다시금 드러난 사건이었습니다.

남중국해와 경제적 딜레마: 현재진행형 갈등
중국과의 갈등으로 경제가 파탄나자 베트남은 팽창 대신 생존을 택했습니다. 1986년 ‘도이모이’ 정책 단행 후 1991년 중국과 국교를 정상화하며 육상 국경 문제는 일단락되는 듯했죠. 그러나 평화는 잠시, ‘남중국해 9단선 문제’가 터져 나왔습니다. 중국은 광활한 해역을 영해라 주장하고, 베트남은 주권 침해라며 격렬히 반대합니다. 원유와 천연가스 노다지인 이곳을 중국이 통제하려 들면서, 베트남 국민들의 반중 감정은 다시 최악으로 치달았습니다. 베트남은 중국을 싫어하지만 동시에 경제적으로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2023년 기준 베트남 수입품의 33.9%가 중국산이며, 관광객 30%가 중국인입니다. 중국은 거대 시장이라는 ‘당근’으로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베트남은 중국의 도발 가능성을 알기에 ‘안보’ 파트너로 미국을 찾았습니다. 1995년 미국과 수교한 베트남의 최대 수출국은 미국입니다. 베트남은 ‘경제는 중국, 안보는 미국’이라는 기묘한 줄타기 외교로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생존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결론: 국제 사회 속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다
지금까지 베트남이 왜 같은 공산 국가임에도 중국을 그토록 싫어하는지, 천년을 관통하는 악연과 50년의 배신, 그리고 현재의 지정학적 생존 전략을 중심으로 살펴봤습니다. 결론적으로 베트남의 반중 감정은 단순한 이념 대립이 아닌, 천년간의 침략과 착취로 축적된 역사적 트라우마이며, 현대에 와서는 중국의 패권적 영토 야심과 경제적 압박에 대한 생존 본능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베트남과 중국의 관계는 지리적 근접성으로 인해 영원히 앙숙이 되기 쉬운 구조를 가졌던 것이죠. 하지만 이 복잡한 관계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교훈은 바로 이것입니다. 국제 사회에서 영원한 동지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베트남은 전쟁의 원수였던 미국과 손을 잡고, 역사적 침략자였던 중국과도 경제적 협력을 이어가며 국익에 따라 유연하게 관계를 변동시키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 역시 미중이라는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베트남과 유사한 딜레마에 놓여 있습니다. 베트남의 사례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 줍니다. 국민적 감정과 별개로 국익을 최우선으로 삼아 현명하게 줄타기 외교를 해내야 한다는 냉철한 현실 말입니다. 역사는 우리에게 미래를 보는 눈을 줍니다. 베트남-중국 관계의 복잡한 역학 구조를 통해 우리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길을 다시 한번 고민해 보는 시간이 되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