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절망의 땅에서 피어난 기적의 씨앗
혹시 지도의 가장자리,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어둠의 땅을 아시나요? 1990년대 초반, 유럽 한복판에 자리했지만 사실상 시체나 다름없던 나라. 가난과 실업, 절망이라는 전염병이 온 나라를 뒤덮었던 슬로바키아 이야기입니다. 주변 강대국은 물론, 당시 아시아 최고의 경제대국 일본조차 이 나라를 철저히 외면했죠. 영국의 유력 경제지는 이곳을 ‘지도에서 지워질 위기에 처한 유럽의 병자’라며 회생 불능 판정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30년이 지난 지금, 전 세계 경제학자들이 경악할 만한 대반전이 일어났습니다. 인공호흡기를 떼면 사망할 것 같았던 그 나라가 독일, 프랑스, 미국을 제치고 ‘인구 대비 자동차 생산 세계 1위’라는 기적의 타이틀을 거머쥔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멈춰버린 이 나라의 심장을 다시 뛰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대한민국이라는 점입니다. 과연 7,000km 떨어진 이 낯선 땅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2. 유럽의 버림받은 동생, 슬로바키아의 비극
이야기의 시작은 1993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동유럽의 체코슬로바키아가 피 흘림 없는 ‘벨벳 이혼’을 통해 두 나라로 쪼개지던 날, 형님 격인 체코는 서유럽과 국경을 맞댄 지리적 이점과 전통의 공업 강국 스코다 브랜드를 앞세워 번성했습니다. 반면 동생 슬로바키아에게 남겨진 유산은 험준한 타트라산맥, 끝없는 감자밭, 그리고 냉전 종식과 함께 고철 덩어리가 된 낡은 무기 공장뿐이었습니다. 무기 수요가 사라지자 공장은 멈췄고, 하루아침에 실업률은 20%까지 치솟았습니다. 거리는 직장을 잃은 가장의 한숨으로 가득했고, 젊은이들은 살길을 찾아 고향을 등져야 했습니다. 특히 당시 ‘기술의 일본’이라 불리던 일본 대기업 조사단은 흑먼지 날리는 도로를 보며 ‘도로도, 기술도, 인프라도 없는 진흙탕에 첨단 공장을 짓는 것은 자살 행위’라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습니다. 그렇게 슬로바키아는 유럽 한복판에서 철저히 고립된 섬이 되어 국가 부도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졌습니다.

3. 한국의 뚝심, 상식을 뒤엎는 결단
국가 존망의 위기 속, 아무도 예상치 못한 곳에서 구원의 손길이 뻗어옵니다. 바로 지구 반대편 대한민국이었습니다. 2000년대 초, 현대차그룹은 글로벌 탑티어로 도약하기 위해 유럽 생산 기지 건설이라는 사활을 건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었습니다. 최종 후보지는 폴란드와 슬로바키아. 누가 봐도 인구가 8배 많고 평야 지대라 공장 건설에 유리한 폴란드의 압승이었습니다. 기아 내부 임원들조차 폴란드를 주장했지만, 이때 슬로바키아 미콜라시 줄린다 총리가 국가의 명운을 건 마지막 승부수를 띄웁니다. 그는 한국 협상단에게 ‘원하는 건 뭐든지 들어주겠다. 땅을 공짜로 달라면 주겠다. 세금을 깎아주겠다. 고속도로가 없으면 산을 뚫어서라도 놓겠다. 제발 우리를 선택해 달라’는 처절한 SOS 신호를 보냈습니다. 정몽구 회장은 깊은 고심 끝에 상식을 뒤엎는 결단을 내립니다. ‘조건이 좋은 곳보다 우리를 간절히 원하는 곳으로 간다. 그들의 간절함이 우리의 뚝심과 만나면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2004년, 기아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슬로바키아 북부 시골 마을 질리나를 선택했습니다. 유럽 언론은 ‘한국인들이 미쳤다’, ‘100% 망해서 철수할 것’이라며 비웃음을 쏟아냈지만, 그들은 한국인에게 흐르는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빨리빨리 정신’과 ‘하면 된다’는 무서운 뚝심을 몰랐던 것입니다.

4. ‘한강의 기적’을 ‘다뉴브강의 기적’으로
공장 건설이 시작되자 슬로바키아 사람들은 또 한 번 충격에 빠졌습니다. 통상 유럽에서 이런 규모의 자동차 공장을 짓는 데는 3\~4년이 걸리지만, 한국 건설사들은 불과 1년여 만에 단축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혹독한 질리나의 겨울, 얼어붙은 땅에서도 한국인들은 밤새 불을 밝히며 작업을 강행했습니다. 현지 인부들은 ‘한국 사람들은 잠도 안 자는가? 사람이 아니라 기계다!’라며 혀를 내둘렀고, 처음에는 의구심을 가졌던 현지인들도 한국인들의 열정에 감화되어 ‘슬로바키아 타임’이라 불리던 느긋함을 버리고 함께 뛰기 시작했습니다. 현대모비스, 현대제철 등 10여 개의 한국 부품 기업 군단이 동반 진출하여 아무것도 없던 황무지에 완벽한 자동차 생태계를 통째로 이식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투자가 아니었습니다. 대한민국이 1970년대 구로공단 허벌판에서 일궈낸 ‘한강의 기적’을 2000년대 슬로바키아 땅에 그대로 복제한 유일무이한 ‘국가 개조 프로젝트’였습니다. 그 무모했던 도박의 결과는 어땠을까요? 현재 슬로바키아의 인구 천 명당 자동차 생산 대수는 198대로, 독일, 일본, 미국 그 어디도 명함조차 내밀지 못하는 압도적인 세계 1위입니다. 슬로바키아 전체 산업 생산의 50%, 전체 수출의 46%가 이 자동차 산업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과거 감자를 캐던 농부의 아들들은 이제 세계 최고 수준의 로봇팔을 다루는 엔지니어가 되어 ‘메이드 인 슬로바키아’ 기아차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한때 슬로바키아를 진흙탕이라 무시했던 일본과 서유럽 기업들은 뒤늦게 땅을 치고 후회했지만, 이미 버스는 떠난 뒤였습니다. 기아차가 들어선 질리나 지역은 이제 쇼핑몰과 호텔이 들어선 부유한 도시로 변모했습니다.

5. 경제를 넘어 문화로, 슬로바키아의 ‘코리안 드림’
한국의 영향력은 단순히 경제와 공장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이제 슬로바키아 사람들은 한국 차를 타는 것을 넘어 한국 문화를 즐기고 한국을 배우고 한국인처럼 생각하려 합니다. 브라티슬라바 시내에는 한식당들이 현지인들로 발 디딜 틈이 없고, 서양인들이 젓가락으로 잡채를 먹고 매운 떡볶이를 호호 불어가며 즐깁니다. 소주를 샷잔에 따라 마시며 건배를 외치는 모습은 한국 드라마에서나 보던 장면이 슬로바키아의 일상이 되었습니다. 밤이 되면 현지 클럽에서 열리는 K-POP 파티에서 수백 명의 젊은이가 한국어 가사를 따라 부르고, 한국인조차 잘 모르는 신인 아이돌의 노래까지 줄줄 꿰는 그들의 열정은 정말 대단합니다. 이런 한국 사랑은 학구열로도 이어져, 슬로바키아 최고의 명문대인 코메니우스 대학교 한국어학과는 400명 지원에 단 15명만 합격하는 상상 초월의 경쟁률을 자랑합니다. 예전에는 단순히 K-POP이 좋아서 지원했다면, 이제는 ‘한국 기업에 취직하고 싶어서요’, ‘한국과 관련된 일을 하면 비전이 있으니까요’라며 미래를 보고 지원합니다. 그들에게 한국은 더 이상 먼 동양의 작은 나라가 아니라, 자신의 꿈을 실현해 줄 기회의 땅이자 롤모델, 즉 ‘코리안 드림’을 꾸는 대상이 된 것입니다.

6. 대한민국, 세계를 움직이는 K-DNA의 힘
이런 천지개벽 같은 기적은 슬로바키아 한 곳뿐일까요? 아닙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전 세계 죽어가는 국가들의 경제 체질을 송두리째 바꿔 놓는 ‘국가 개조의 마법’을 부리고 있습니다. 가까운 베트남은 삼성전자 덕분에 전 세계 스마트폰 생산 기지로 탈바꿈했고, 폴란드는 한국산 K2 전차와 K9 자주포로 무장하며 유럽의 방패가 되는 동시에 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 공장 덕분에 유럽 전기차 산업의 심장부로 격상되었습니다. 중동의 UAE 역시 한국형 원전 바라카를 통해 청정 에너지 강국으로 변모했습니다. 대한민국은 단순히 물건을 파는 장사꾼이 아닙니다. 우리는 파트너 국가에 공장을 짓고 기술을 전수하며, 그 나라 국민들이 먹고살 수 있는 미래의 밥그릇을 만들어 줬습니다. 다른 선진국들이 자원을 빼가고 물건을 팔아먹기에 급급할 때, 한국은 그들과 함께 땀을 흘리며 그 나라의 산업을 일으켜 세웠습니다. 1960년대 구로공단과 중동 사막에서 ‘잘 살아보세’를 외쳤던 우리가 가난과 설움을 뼈저리게 알기에, 지구 반대편 가난한 나라의 손을 외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잘난 체하며 훈계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흑먼지를 뒤집어쓰며 ‘우리도 해냈으니 너희도 할 수 있다’라고 손을 내미는 것, 그것이 바로 한국 스타일, K-DNA의 힘입니다. 슬로바키아 질리나에 펄럭이는 태극기는 단순한 기업의 성공을 넘어, 가난을 극복해 본 나라만이 보여줄 수 있는 위대한 연대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세계지도 곳곳을 밝히고 있는 대한민국의 저력, 이 위대한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또 어떤 기적의 꽃을 피울지 정말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