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를 외치다, 감옥에 갇히다: 홍콩 민주주의의 그림자
한 평생 자유를 외치던 한 언론인이 종신형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의 죄목은 다름 아닌 ‘신문에 자유와 민주주의를 이야기하고 국제사회에 홍콩을 도와달라고 호소했다’는 것. 이 믿기지 않는 현실은 단순한 개인의 비극을 넘어, 한때 아시아의 자유를 상징했던 홍콩의 민주주의가 어떻게 무너지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오늘은 홍콩의 마지막 희망이자 언론 자유의 상징이었던 지미 라이의 재판 이야기를 통해, 홍콩의 슬픈 오늘을 함께 들여다보겠습니다.

무일푼 소년에서 미디어 거물로: 지미 라이의 삶
지미 라이는 지금은 언론 재벌로 기억되지만, 그의 시작은 초라했습니다. 12살 어린 나이에 배 화물칸에 몸을 숨겨 홍콩으로 건너온 그는 가진 것 없는 공장 노동자였습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의류 산업을 배우며 자수성가했고, 1981년 의류 브랜드 ‘지오다노’를 성공적으로 일궈냈습니다. 하지만 그의 열정은 사업에만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홍콩 반환을 2년 앞둔 1995년, 그는 민주주의 성향의 일간지 ‘애플 데일리’를 창간하며 언론계에 발을 들입니다. 당시 ‘일국양제’ 원칙 아래 홍콩의 자유가 보장될 것이라는 약속을 믿었던 많은 이들에게 애플 데일리는 희망의 목소리였습니다.

자유를 외치다, 압박받다: 국가보안법의 그림자
애플 데일리는 대중적인 기사부터 권력 감시 보도까지 선보이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지미 라이는 ‘아시아의 머독’으로 불렸습니다. 그는 1989년 톈안먼 민주화 시위 직후 언론계에 뛰어들어 줄곧 중국 권력을 거침없이 비판했습니다. 2019년 홍콩 대규모 민주화 시위가 일어났을 때도 애플 데일리는 시위를 지지하며 홍콩인들의 핵심 가치인 자유와 민주를 수호하자고 호소했습니다. 지미 라이 역시 시위 현장에 모습을 드러냈고, 미국 등 국제사회에 홍콩 상황을 알리며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들은 훗날 홍콩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즉 ‘외세와의 공모’로 기소되는 핵심 근거가 되었습니다. 결국 2020년 6월, 중국 중앙정부는 홍콩 국가보안법을 일방적으로 시행했고, 이는 홍콩의 자유를 급격히 옥죄는 시작이었습니다.

정의인가, 숙청인가: 논란 속 지미 라이 재판
국가보안법 시행 이후 홍콩의 풍경은 급변했습니다. 두 달도 채 되지 않아 200여 명의 경찰이 애플 데일리 본사를 덮쳤고, 지미 라이와 간부들은 대거 체포되었습니다. 2021년 6월, 창간 26년 만에 애플 데일리는 강제 폐간되는 비극을 맞았습니다. 해외 도피 기회에도 불구하고 ‘나를 키워준 홍콩을 버릴 수 없다’며 끝까지 남았던 지미 라이는 결국 2020년 말부터 보석 없이 수감된 채 재판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2년 가까이 이어진 재판에서 그는 끝까지 무죄를 주장했지만, 2023년 12월 15일, 홍콩 법원은 그에게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 재판을 위해 특별히 지명된 세 명의 판사가 판결을 내렸고, 배심원단은 애초에 배제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판결문에 국가보안법 시행 이전에 해외에 홍콩 지원을 호소한 행동들까지 상세히 적시되어, 한때 합법이었던 언론 활동이 사후에 죄로 뒤바뀌었다는 점입니다.

홍콩의 사라진 자유, 그리고 지미 라이의 이름
이번 판결은 홍콩의 모든 기자, 출판인, 변호사, 시민사회에 대한 경고탄이라는 우려가 큽니다. 실제로 국가보안법 시행 이후 28명 이상의 언론인이 기소되었고, 홍콩의 언론 자유 지수는 과거 세계 18위에서 140위까지 추락했습니다. 이제 홍콩 내부에서는 지미 라이의 이름조차 부르는 것이 금기가 되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의 재판 소식은 전 세계 언론에 실리며 자유의 최후 보루가 무너진 홍콩의 현실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지미 라이 본인 또한 옥중에서도 신념을 굽히지 않고 있습니다. 그의 삶은 한 개인의 일대기를 넘어, 홍콩 현대사의 축소판과 같습니다. 한 사람의 몰락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완전히 달라진 홍콩의 비극적인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홍콩의 오늘은 과연 우리의 내일이 될 것인지, 우리는 엄숙하게 지켜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