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이 몰랐던 러시아의 진짜 권력자들
여러분은 러시아의 현대사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누구를 생각하시나요? 아마 많은 분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떠올리실 겁니다. 하지만 러시아를 진정으로 움직이고, 심지어 현재의 푸틴을 만든 숨겨진 그림자 세력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바로 ‘올리가르히’입니다. 그리스어로 ‘소수에 의한 지배’를 뜻하는 이 단어는 러시아에서 1990년대 이후 부와 권력으로 국가를 좌우했던 신흥 초부유층을 지칭합니다. 한국의 재벌과 비교되기도 하지만, 올리가르히는 러시아 경제 발전에 기여하기는커녕 오히려 발목을 잡았다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도대체 이들은 누구이며, 러시아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요? 지금부터 그들의 탄생부터 몰락, 그리고 현재까지의 이야기를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혼돈 속에서 태어난 그림자 제왕들
올리가르히의 탄생은 1985년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개혁, 즉 ‘글라스노스트’와 ‘페레스트로이카’에서 시작됩니다. 경제 정체, 기술 낙후, 만연한 부패로 몸살을 앓던 소련은 시장 경제 도입을 시도했죠. 1987년 국영 기업법과 1988년 협동조합법이 통과되면서 사기업 형태의 활동이 가능해졌고, 이때부터 올리가르히의 원조격 인물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는 컴퓨터 수입으로, 보리스 베레조프스키는 메르세데스 수입으로 막대한 부를 쌓았죠. 이들의 성공 비결은 자수성가가 아닌 권력을 가진 이들과의 ‘연결고리’였습니다. 공산주의 체제 하에서 국가 기관의 지원을 받거나 권력자와의 친분을 통해 부를 축적하며, 훗날 러시아를 지배할 기반을 다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민영화와 정치 공작으로 권력을 장악하다
소련 붕괴 후, 보리스 옐친 정부는 신자유주의 경제 개혁을 추진하며 ‘가격 통제 해제’와 ‘민영화’를 단행했습니다. 예상과는 달리 물가는 30배 이상 폭등했고, 하이퍼 인플레이션으로 러시아 경제는 대공황 시즌 미국보다 더 심각하게 붕괴했습니다. 민영화 과정 또한 문제가 많았습니다. 정부는 ‘바우처 민영화’라는 방식을 도입했는데, 빈곤층이 된 대다수 국민은 주식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고, 올리가르히들은 헐값에 바우처를 쓸어 담아 국영 기업의 지분을 독점했습니다. 결정적인 전환점은 1995년의 ‘주식 담보 대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재정 위기에 빠진 옐친 정부에 올리가르히들이 대출을 제공하는 대신, 알짜배기 국영 기업의 지분을 담보로 받았고, 정부가 빚을 갚지 못하자 이 지분들은 고스란히 올리가르히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언론과 막대한 자금으로 옐친의 재선을 돕고, 러시아의 정치와 경제 인프라를 완전히 장악하며 진정한 의미의 권력자가 되었습니다.

푸틴의 등장과 올리가르히 숙청
올리가르히의 권력이 정점에 달했을 때, 모두가 예상치 못한 인물이 등장했습니다. 바로 블라디미르 푸틴입니다. 옐친의 후임으로 대통령 권한대행이 된 푸틴은 올리가르히의 도움으로 권좌에 올랐지만, 취임 후 곧바로 이빨을 드러냈습니다. 그는 ‘강한 러시아’를 재건하려는 국가주의자였고, 올리가르히를 ‘배신자’로 여겼습니다. 푸틴은 언론 장악부터 시작하여 구신스키의 NTV 본사를 습격하고 베레조프스키를 영국으로 망명하게 만들었습니다. 2000년, 푸틴은 러시아 최고 부자들을 불러모아 과거의 불법은 묻지 않겠지만, ‘정치에 관여하지 말고, 세금을 제대로 내며, 각자 사업에만 충실하라’는 일종의 사회 계약을 통보했습니다. 이 통보를 거부한 대표적인 인물이 유코스 석유기업의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였습니다. 그는 야당 지원과 정부 부패 비판, 그리고 유코스 지분 매각 시도 등으로 푸틴의 심기를 건드렸고, 결국 2003년 체포되어 10년간 시베리아 감옥에 수감되었습니다. 유코스 사태는 푸틴에게 감히 대항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며, 러시아 경제의 주도권이 올리가르히에서 국가, 즉 푸틴에게로 넘어가는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숙청 이후, 새로운 그림자 권력의 등장
푸틴에게 굴복한 올리가르히들은 과거와 같은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은 잃었지만, 부를 유지하며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블라디미르 포타닌, 올레그 데리파스카와 같은 일부 친푸틴 성향의 올리가르히들은 오히려 더 큰 부와 권력을 누리게 되었죠. 동시에 푸틴의 측근들, 즉 KGB/FSB 출신 실로비키들이 국영 기업을 장악하며 ‘실로바르히’라 불리는 신흥 올리가르히로 떠올랐습니다. 아르카디 로템부르크, 유리 코발축크 등이 대표적인 인물들입니다. 이들은 대부분 국가 관련 자원 기업의 주요 인물이며 해외 제재를 받는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국민들은 올리가르히 숙청과 함께 고유가 시대에 접어들며 경제 성장을 경험했고, 이는 푸틴의 강력한 리더십 덕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올리가르히에게서 국가로, 그리고 푸틴의 측근들로 부의 독점 형태만 바뀌었을 뿐, 러시아 경제는 여전히 특정 소수에 의해 좌우되고 있습니다.

현재의 러시아, 끝나지 않은 그림자들의 이야기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은 올리가르히들에게 또 다른 격변을 가져왔습니다. 서방의 강력한 경제 제재로 이들은 막대한 재산을 잃었고, 푸틴은 전쟁 비용 마련을 명분으로 ‘특별세’를 부과하며 기업 국유화를 가속화했습니다. 전쟁에 반대 목소리를 낸 올리가르히들은 곧바로 숙청되거나 기업을 헐값에 매각해야 했고, 그들의 자산은 다시 푸틴의 충성스러운 측근들에게 넘어갔습니다. 현재 러시아는 형태만 바뀌었을 뿐, 푸틴과 그의 친위 세력인 실로바르히가 국가를 지배하는 체제가 더욱 공고해졌습니다. 90년대에는 지배자로, 2000년대에는 푸틴의 파트너로, 그리고 지금은 그의 하수인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는 올리가르히들. 푸틴이 죽거나 혁명이라도 일어나지 않는 한, 러시아의 권력 구조는 큰 변화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단순히 과거의 역사가 아닌, 현재 러시아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