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동남아시아 최초의 고속철도, 후시의 화려한 등장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모두가 더 빠르고 효율적인 것을 꿈꿉니다. 특히 동남아시아에서는 오랜 숙원이었던 고속철도가 드디어 베일을 벗었죠. 바로 인도네시아의 ‘후시(Whoosh)’ 고속철도 이야기입니다. 2023년 공식 운행을 시작한 후시는 수도 자카르타와 서자와주의 반둥을 잇는 이 지역 유일의 고속철도로, 최고 시속 350km를 자랑합니다. 기존에는 세 시간 넘게 걸리던 거리를 단 40분 만에 주파하며 인도네시아 국민에게는 그야말로 ‘신세계’를 선사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습니다. 조코 위도도 당시 대통령이 국가적 자부심까지 표현할 정도로, 후시는 인도네시아의 미래를 상징하는 희망찬 프로젝트였습니다.

2. 장밋빛 미래를 가로막는 그림자: 천문학적인 적자의 늪
하지만 장밋빛 꿈만 꾸던 후시는 예상치 못한 암초에 부딪히며 ‘달리는 시한폭탄’이라는 오명까지 얻게 됩니다.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천문학적으로 불어난 공사비와 운영 적자였습니다. 초기 사업비는 약 60억 달러로 책정되었지만, 토지 수용 및 건설비 초과 등으로 약 12억 달러가 추가 발생하며 총사업비는 72억 달러(약 9조 8천억 원)까지 치솟았습니다. 이로 인해 사업을 맡은 컨소시엄은 중국 은행에서 추가 대출을 받는 등 재정난에 허덕이게 됩니다. 어렵게 개통했지만,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지난해에만 3,700억 원, 올해 상반기까지 1,400억 원의 적자가 쌓이며, 최대 지분 소유자인 인도네시아 국영 철도공사(KAI)는 빚과 적자라는 이중고에 빠지게 됩니다.

3. 왜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후시를 외면할까?: 비싼 요금과 외곽 역 문제
그렇다면 왜 이렇게 큰돈을 들여 건설한 고속철도를 사람들이 타지 않는 걸까요? 첫째는 ‘요금’ 문제입니다. 후시의 최저 요금은 17,000원 정도로 버스 최저 요금(8,700원)의 두 배에 달합니다. 1등석은 7만 원을 훌쩍 넘어 서민들에게는 부담스러운 가격이죠. 둘째는 ‘정차역의 위치’입니다. 후시의 정차역들은 도심 외곽에 위치해 있어 승객들이 역에 도착한 후 다시 시내까지 이동해야 하는 불편함이 큽니다. 마치 인천공항에 내려 서울 도심까지 다시 이동하는 것과 같은 상황인 셈입니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후시의 일평균 승객 수는 당초 예측치인 7만 명은 물론, 비관적인 예측치인 5만 명에도 한참 못 미치는 주말 2만 명, 평일 1만 6천 명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4. 단순한 오판이 아닌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의 그림자
후시의 정차역이 이렇게 외곽에 지어진 데에는 단순한 설계 미스 이상의 이유가 숨어 있습니다. 바로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초기 사업 수주 과정에서 중국은 일본보다 저렴한 공사비(55억 달러 vs 62억 달러)와 낮은 초기 부담(총사업비의 75% 대출)을 제시하며 인도네시아 정부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러나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은 단순히 사람을 빠르게 이동시키는 것을 넘어, 물류와 산업 공급망을 연결하는 데 초점을 맞춥니다. 따라서 후시의 정차역들은 땅값이 싸고 산업 단지나 신도시 개발이 계획된 외곽 지역에 주로 건설되었습니다. 철도 자체보다는 철도를 ‘마중물’ 삼아 주변 지역을 개발하고 중국 기업과 자본을 투입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인도네시아는 더 큰 재정 부담을 떠안게 되었지만, 중국은 자국의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는 셈이 된 것입니다.

5. 위기의 후시, 미래는 어디로?: 딜레마와 앞으로의 과제
현재 후시는 40년 만기였던 대출 상환 기한을 60년으로 늘리는 등 재정적 숨통을 트려는 노력을 하고 있지만, 중국과의 추가적인 협상도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결국 정부 예산을 투입하여 빚을 갚거나 투자 수익을 활용하는 등의 딜레마에 직면해 있습니다. 동남아 최초의 고속철도이자 인도네시아의 자부심이었던 후시. 지금은 기대와 달리 막대한 적자와 복잡한 국제 정세 속에서 힘겹게 운행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과연 후시는 이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금 인도네시아의 희망이 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시한폭탄’이라는 오명처럼 재정적 부담만 남긴 채 잊혀지게 될까요? 이 흥미로운 고속철도의 미래를 함께 지켜보며 여러분의 의견도 댓글로 남겨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