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태평양의 작은 섬, 티니안의 비밀
여러분, 혹시 비행기를 타고 끝없이 펼쳐진 태평양 상공을 날다, 에메랄드빛 산호초가 박힌 보석 같은 섬을 발견한 적 있나요? 아름다운 휴양지로 유명한 사이판에서 불과 10분 거리에 있는 작은 섬, 티니안. 겉보기엔 평화로운 시골 마을 같지만, 이곳에는 전 세계 인류학자와 역사학자들을 놀라게 한 놀라운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길거리에서 마주친 원주민의 얼굴에서 낯익은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이 겹쳐지고, 마트 진열대에는 한국 컵라면과 소주가 자리 잡고 있는 이 섬. 단순한 K-푸드의 인기가 아닙니다. 바로 우리 민족의 진한 핏줄 이야기가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작은 대한민국’, 티니안. 그 가슴 시린 80년 전 이야기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2. 지옥이 된 낙원: 일제의 만행과 조선인의 피땀
시계를 거꾸로 1940년대, 힘없는 나라였던 대한민국은 일제강점기라는 암울한 시기를 겪고 있었습니다. 일제는 태평양 전쟁 준비를 위해 사이판과 티니안 섬을 거대한 식량 및 군사 기지로 만들려 했지만, 땡볕 아래 사탕수수를 베고 비행장을 닦을 인력이 부족했습니다.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가난에 허덕이던 조선의 젊은이들이었습니다. “남쪽 나라에 가면 따뜻하고 돈도 많이 벌 수 있다”는 사탕발림에 속아 수많은 조선인들이 배에 올랐고, 그들이 도착한 티니안은 낙원이 아닌 생지옥이었습니다. 당시 섬 인구의 3분의 2가 조선인일 정도로 많은 인원이 강제 징용되었고, 이들은 곡괭이와 삽, 맨손으로 산호를 깨고 땅을 다지며 거대한 활주로를 건설해야 했습니다. 허기진 배를 콩찌꺼기 주먹밥으로 채우고, 목마름에 자기 소변까지 마셔야 했던 비참한 삶. 지금 티니안 북부에 남아있는 2.6km 길이의 거대한 활주로는 단순한 콘크리트 바닥이 아닙니다. 고향을 그리워하다 객사한 우리 선조들의 피와 땀, 그리고 짓이겨진 살점이 뒤섞여 만들어진 뼈아픈 역사의 증거입니다.

3. 비극의 아이러니, 그리고 불굴의 애국심
1944년, 전쟁의 판도가 뒤집히자 미군은 일본 본토를 공격하기 위한 전략적 요충지로 티니안 섬을 주목했습니다. 대대적인 상륙 작전이 시작되자 패색이 짙어진 일본군은 ‘전원 옥쇄’라는 최악의 명령을 내렸고, 민간인과 조선인 징용자들에게까지 자결을 강요했습니다. 사이판의 만세절벽처럼, 티니안에서도 수많은 조선인들이 일본군의 총칼에 떠밀리거나 세뇌된 공포 때문에 절벽 아래로 몸을 던져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습니다. 더욱 가슴 아픈 역사의 아이러니는 이곳에서 발생합니다. 미군이 점령한 티니안의 비행장은 조선인들이 피땀 흘려 닦아 놓은 곳이었고, 1945년 8월, 이곳에서 이륙한 B-29 폭격기 ‘에놀라 게이’는 히로시마에 인류 최초의 원자폭탄을 투하했습니다. 그리고 사흘 뒤, 나가사키에도 또 다른 원자폭탄이 떨어졌습니다. 이 두 방의 폭탄으로 우리는 광복을 맞았지만, 당시 일본 본토에 끌려갔던 수만 명의 조선인 또한 원폭의 희생양이 되었습니다. 자기 동포를 죽이는 무기가 발사되는 발판을 내 손으로 만들고, 그 폭탄에 또 다른 동포들이 희생당하는 기막힌 운명. 티니안 흙 한 줌에도 우리 민족의 깊은 한이 서려 있다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닌 이유입니다.

4. 버려졌지만 버리지 않은 이름: 티니안, 작은 한국의 현재
전쟁의 포성이 멈추고 광복이 찾아왔지만, 그 지옥 같은 학살 속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약 2,500명의 조선인들에게는 또 다른 시련이 닥쳤습니다. 미군과 일본, 그리고 갓 해방된 조국 대한민국 모두 이들을 데려올 여력이 없었고, 그들은 지도에도 잘 나오지 않는 작은 섬에 버려졌습니다. 하지만 티니안의 우리 선조들은 절망 속에서도 결코 한국인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습니다. 현지 원주민 참모로족과 어울려 살면서도 ‘조선인회’를 만들고, 미군 기지에서 번 푼돈을 모아 당시 미국 대통령 루즈벨트에게 감사의 편지와 정치 헌금을 보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1945년에 무려 660달러(현재 가치 수억 원)를 모아 하와이 독립운동 단체에 송금했다는 사실입니다. 당장 내일 먹을 쌀도 부족한 상황에서도 조국의 완전한 독립을 먼저 걱정한 이들의 뜨거운 애국심은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현재 티니안에는 삼성 TV를 보고 현대차를 타며 BTS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한국계 후손들이 살고 있습니다. 비록 한국어는 대부분 잊었지만, 뿌리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하며, 증조할아버지의 나라가 세계적인 기술 강국이 된 것을 자랑스러워합니다. 티니안 북부 밀림 속에 자리한 한국인 위령비는 고국을 바라보고 서 있으며, 매년 명절이면 검게 그을린 김씨, 이씨 후손들이 모여 제사를 지냅니다. 이들은 우리가 누리는 번영과 자유가 이름 모를 섬에서 쓰러져 간 선조들의 희생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