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물질, SF 속 이야기가 현실이 되다
매순간 지구를 꿰뚫고 지나가는 반물질 입자들. 우리는 반물질을 흔히 SF 영화 속 낯선 존재로 여기곤 합니다. 만약 이들이 대량으로 존재했다면 우주는 끝없는 대참사의 현장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이 극히 적은 양의 반물질은 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요? 138억 년 우주의 역사 속에서 반물질은 진작에 소멸했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이 흥미로운 우주의 미스터리를 함께 파헤쳐 봅시다.

우주 스펙트로미터의 예상치 못한 발견: 양전자의 물결
2011년, 국제 우주 정거장의 AMS-02 스펙트로미터는 암흑 물질의 흔적을 찾으려 했지만, 예상치 못한 현상을 포착했습니다. 바로 기존 이론으로는 설명 불가능한 엄청난 양의 양전자(반물질 전자)였습니다. 방사성 붕괴나 별의 폭발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강력한 양전자의 흐름은, 우리 가까이에 강력한 반물질 발생원이 존재함을 암시했습니다. 암흑 물질 붕괴 가설도 제기되었으나, 관측된 신호는 은하 전체에서 오는 부드러운 빛이 아닌, 훨씬 날카롭고 국소적인, 특정 위치에서 오는 것이었습니다. 이 미스터리의 실마리는 1970년대부터 수수께끼로 남아있던 감마선 원천, ‘제민가(Geminga)’로 향했습니다.

침묵하는 펄서, 제민가(Geminga)의 정체
오랫동안 정체불명의 유령 같았던 제민가는 1991년에 이르러 드디어 그 비밀을 드러냈습니다. 독일의 로스하트와 미국의 이그렛 망원경이 독립적으로 제민가가 0.237초마다 맥동하는 ‘펄서’임을 밝혀낸 것입니다. 펄서는 거대한 별의 잔해인 중성자별로, 티스푼 한 숟갈이 10억 톤에 달할 만큼 극도로 밀도가 높고 빠르게 자전하며 전파나 감마선, 하전 입자를 방출합니다. 놀라운 점은 제민가가 전파 신호를 거의 내지 않는 ‘침묵하는 펄서’였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시야에서 전파 빔은 비껴갔지만, 감마선 빔은 정확히 우리에게 도달하고 있었습니다. 더욱이 제민가는 초속 200km라는 엄청난 속도로 은하를 질주하며 X선 꼬리를 남기는 ‘침묵의 도망자’였던 것입니다.

별자리만한 감마선 오라와 반물질의 진실
2017년, 멕시코의 HAWC 관측소와 페르미 우주 망원경은 제민가 주변에서 밤하늘 약 20도에 달하는 거대한 ‘감마선 오라’를 발견했습니다. 이 오라는 예상과 달리 비대칭적인 형태로, 제민가의 초고속 움직임 때문에 한쪽으로 늘어져 있었습니다. 이 거대한 오라의 근원은 바로 제민가에서 극한까지 가속된 전자와 양전자였습니다. 이 입자들이 성간 공간의 희미한 빛과 충돌하며(역콤프턴 산란) 감마선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놀랍게도 제민가 단 하나가 AMS-02가 관측한 양전자의 약 20%를 설명할 수 있음이 밝혀졌습니다! 수수께끼의 반물질은 암흑 물질이 아닌, 자연이 만든 입자 가속기, 즉 ‘펄서’에서 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은하가 반물질 발전소로 가득 차 있다는 새로운 우주 그림이 그려지는 순간입니다.

우주의 섬세한 균형과 우리의 놀라운 행운
제민가처럼 반물질을 뿜어내는 중성자별이 우주에 얼마나 더 숨어 있을까요? 만약 제민가가 지금처럼 800광년 떨어진 곳이 아니라, 단 10광년 거리에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펄서풍은 지구를 향해 폭풍처럼 몰아쳐 자기장을 뚫고 대기를 감마선으로 가득 채워 생명에 치명적인 재앙을 초래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우주는 섬세한 균형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초신성이나 초고속 펄서 같은 우주의 위험지대를 피해 은하의 조용한 품속에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은 실로 놀라운 행운입니다. 어쩌면 이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닐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