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에버기븐 사고와 수에즈 운하의 그림자
2021년 3월, 초대형 컨테이너선 에버기븐호가 수에즈 운하에 갇히며 전 세계 물류를 마비시켰던 사건을 기억하시나요? 단 6일 만에 100억 달러어치 화물이 묶였고, 세계 무역의 12%가 좁은 물길 하나에 좌우됨이 드러났죠. 이 위기 속 이스라엘은 60년 넘게 잠들어 있던 ‘벤구리온 운하’ 구상을 꺼내 들었습니다. 이 운하 구상은 단순한 토목 공사를 넘어 세계 경제와 지정학의 판도를 흔들고 있습니다.

2. 세계 경제의 동맥, 수에즈 운하의 아킬레스건
수에즈 운하는 지중해와 홍해를 잇는 유럽-아시아 최단 해상 무역로입니다. 아프리카 희망봉을 우회하는 것보다 7,000km 짧고 열흘 이상 빠르죠. 연간 2만 척 이상이 통과하며, 이집트에게 약 13조 원의 통행료 수입을 안겨주는 국가 경제의 생명줄입니다. 하지만 좁은 폭 때문에 대형 선박들이 일렬로만 통행해야 하므로, 에버기븐호 사고처럼 단 한 척의 문제가 전 세계 물류 마비를 초래할 수 있는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있습니다.

3. 벤구리온 운하: 60년 야망과 복잡한 지정학적 셈법
수에즈의 취약성을 파고든 ‘벤구리온 운하’는 이스라엘 초대 총리의 이름을 딴 구상으로 1955년부터 논의, 에버기븐 사고 이후 재조명되었습니다. 수에즈보다 깊고 넓어 양방향 통행 및 병목 현상 차단이 가능하도록 설계될 예정입니다. 이스라엘은 이 운하로 이집트 의존도를 낮추고 새 경제 허브를, 미국은 동맹국 이스라엘 통제 대체 루트로 군사적 유연성을 얻으려 합니다. 반면 이집트는 통행료 수입 감소를, 중국은 일대일로 핵심 루트인 수에즈 중요성 약화를 경계하며, 이 운하 하나를 두고 미국-이스라엘 대 이집트-중국 구도가 형성됩니다.

4. 실현되지 않아도 강력한 ‘유령 카드’의 힘
벤구리온 운하는 막대한 비용(70조 원), 네게브 사막 기술 난제, 가자 지구 통과 정치 문제, 국제법적 쟁점 등 넘어야 할 장벽이 많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이 운하가 실제로 건설되지 않아도 이미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것입니다. 이 구상이 회자될 때마다 이집트는 긴장하며 수에즈 운하 서비스 개선이나 통행료 정책에 간접적 압박을 받습니다. 즉, 존재하지 않는 운하 구상 자체가 국제 협상에서 강력한 ‘레버리지’ 역할을 하는 셈이죠. 벤구리온 운하는 단순한 토목 공사가 아니라, 물길 하나가 세계 무역 판도와 강대국 간 힘의 균형을 뒤흔드는 지정학적 게임의 핵심 카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