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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사회 / 정치

100년 넘게 이어진 애증, 중일 관계는 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나?

작성자 mummer · 2025-11-29

서론: 격화되는 중일 갈등, 그 이유는?

서론: 격화되는 중일 갈등, 그 이유는?

“중국이 대만을 공격하면, 일본을 공격하는 것으로 간주하겠다.” 최근 일본 유력 정치인의 강경 발언으로 중국 대륙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관영 매체는 연일 비난을 쏟아내고, 무력 시위와 함께 일본 여행 자제령까지 내려졌죠. 수산물 불매 운동은 물론, 인기 애니메이션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 개봉까지 연기될 정도입니다. 한중일 정상회담마저 무산될 위기에 처한 지금, 양국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차갑게 얼어붙고 있습니다. 과연 무엇이 이웃 나라였던 두 나라를 이토록 험악한 관계로 만든 것일까요? 그 해답은 100여 년 전, 우리의 역사와 깊게 얽힌 그 사건에서부터 시작됩니다.

1. 아시아의 운명을 바꾼 청일전쟁: 모든 것의 시작

1. 아시아의 운명을 바꾼 청일전쟁: 모든 것의 시작

19세기 말, 일본은 조선을 발판 삼아 대륙으로 뻗어 나가려는 야심을 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조선은 아시아의 맹주였던 청나라의 영향력 아래 있었죠. 일본은 조선 내 급진개화파였던 김옥균과 손을 잡고 갑신정변을 지원하며 청나라를 몰아내려 했지만, 청군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실패하고 맙니다. 이후 양국은 ‘텐진 조약’을 맺어 조선에서 군대를 함께 철수하고, 파병 시 서로에게 알리기로 약속합니다. 10년 뒤, 조선에서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자 조선 조정은 청나라에 도움을 요청했고, 텐진 조약에 따라 일본군도 조선 땅을 밟게 됩니다. 하지만 일본의 속셈은 따로 있었습니다. 동학농민군이 정부와 휴전하며 반란이 끝나자, 일본은 조약을 어기고 군대를 철수하지 않은 채 오히려 경복궁을 점령하고 친일 내각을 세워 갑오개혁을 강행합니다. 그리고는 “조선의 독립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청나라 군대를 기습 공격하며 청일전쟁을 일으켰습니다. 모두의 예상을 깨고 전쟁은 일본의 압승으로 끝났고, 시모노세키 조약을 통해 청나라는 조선에 대한 모든 권리를 포기하고 대만과 막대한 배상금을 일본에 넘겨주게 됩니다. 이 전쟁으로 아시아의 패권은 중국에서 일본으로 완전히 넘어갔고, 일본은 제국주의 열강으로 발돋움하는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2. 끝없는 침략과 냉전 속의 실리 외교

2. 끝없는 침략과 냉전 속의 실리 외교

청일전쟁의 배상금으로 산업혁명을 이룬 일본의 야욕은 끝이 없었습니다. 세계 대공황의 여파로 군국주의가 득세하자, 일본 군부는 정부의 통제를 벗어나 만주사변과 중일전쟁을 일으키며 본격적인 대륙 침략에 나섭니다. 이 과정에서 난징 대학살, 731부대의 생체 실험 등 인류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죠.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하고 중국 대륙이 공산화되면서 양국의 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합니다. 냉전 시대, 미국과 손잡은 일본은 공산 정권인 중국 본토 대신 대만의 국민당 정부와 수교합니다. 하지만 1970년대, 소련을 견제하려는 미국이 중국과 가까워지는 ‘핑퐁 외교’를 펼치자 일본은 다급해졌습니다. 거대한 중국 시장을 미국에 뺏길 수 없다고 판단한 일본은 서둘러 중국과 국교를 정상화합니다. 놀랍게도 중국은 이때 전쟁 배상금을 포기하는 대범한 결정을 내립니다. 당장 돈 몇 푼을 받는 것보다 일본의 투자와 기술을 이전받는 것이 장기적으로 이득이며, 대만과의 외교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전략적 판단이었습니다. 이렇게 실리와 필요에 의해 맺어진 관계는 약 30년간 평화를 유지하는 듯 보였습니다.

3. 버블 붕괴와 우경화: 다시 벌어지는 상처

3. 버블 붕괴와 우경화: 다시 벌어지는 상처

1990년대, 양국 관계에 다시 균열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80년대 버블 경제의 호황을 누리던 일본이 거품이 꺼지면서 ‘잃어버린 10년’이라 불리는 장기 불황에 빠진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힘든 현실을 마주한 일본 사회는 과거 제국주의 시절의 영광에 집착하기 시작했고, 이는 우경화로 이어졌습니다. “언제까지 사과만 할 것이냐”는 목소리가 커지며 침략의 역사를 부정하고 교과서를 왜곡하는 움직임이 나타났습니다. 특히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정치인들이 참배하면서 중국과 한국의 거센 반발을 샀죠. 중국 역시 톈안먼 사태 이후 흔들리는 공산당의 정통성을 강화하고 내부 불만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 ‘반일’ 감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양국 정치인들의 필요에 의해, 역사를 잊은 일본의 젊은 세대와 상처받은 역사를 되새기는 중국인들이 양산되면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깊은 감정의 골이 파였습니다.

4. 힘의 역전, 그리고 대만 문제라는 뇌관

4. 힘의 역전, 그리고 대만 문제라는 뇌관

2010년, 중국의 GDP가 일본을 추월하면서 115년간 이어져 온 아시아의 경제 지형이 뒤바뀌었습니다. 이는 일본에 엄청난 위기감을 안겨주었고, 우경화는 더욱 심화되었습니다. 이제 양국은 과거처럼 서로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중국은 더 이상 일본의 기술이나 투자가 절실하지 않으며, 오히려 힘을 바탕으로 일본을 압박하기 시작했습니다. 영유권 분쟁 지역인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문제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에서 보여준 중국의 고압적인 태도가 이를 증명합니다. 현재 양국 갈등의 가장 큰 뇌관은 바로 ‘대만 문제’입니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일본의 에너지 수입로가 막히고 안보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기 때문입니다. “대만의 위기는 곧 일본의 위기”라는 인식이 일본 내에 널리 퍼져 있으며, “대만을 때리면 일본을 때린 걸로 간주하겠다”는 강경 발언이 나오는 배경이기도 합니다. 최근 중국에서 일본인 아이가 일본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살해당하는 끔찍한 사건까지 발생하며 양국의 감정 대립은 극에 달했습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등장한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 같은 강경파 정치인은 중국의 위협에 맞서겠다는 여론의 지지를 받으며, 중일 관계를 더욱 예측할 수 없는 안갯속으로 밀어 넣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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