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모텔, 1988 올림픽과 함께 피어나다
오늘날 익숙한 숙박업의 한 형태인 ‘모텔’이 한국 땅에 본격적으로 뿌리내린 시점은 언제일까요? 바로 1988년 서울 올림픽 전후입니다. 그전까지 한국 숙박업의 주류는 여관이나 여인숙 같은 1세대 숙박시설이었죠. 하지만 세계인의 축제인 올림픽을 기점으로 급증한 외국인 관광객과 출장 수요는 기존 숙박시설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고, 새로운 형태의 숙박업이 절실해졌습니다.

정부 지원과 일본 ‘러브호텔’ 문화의 만남
폭발적인 숙박 수요를 해결하기 위해 당시 정부는 파격적인 지원책을 내놓았습니다. 장기 저리 대출을 지원하고, 심지어 준농경지에도 숙박시설 인허가를 내주는 등 적극적인 정책을 펼쳤죠. 여기에 더해, 그 당시 일본에서 유행하던 ‘러브호텔’ 개념이 한국 실정에 맞게 접목되기 시작했습니다. 1980년대 후반의 ‘3저 호황(저유가, 저금리, 저달러)’으로 인한 유흥 및 소비 증가 트렌드와 맞물려, 모텔은 연인 중심의 유흥 공간이자 프라이빗한 휴식처로 빠르게 자리매김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한국 모텔의 시작이자 부흥기였습니다.

시작과 동시에 대박! 모텔 사업의 황금기
그렇다면 이 시기에 모텔 사업을 시작한 사람들은 어땠을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대박’이었습니다. 정부의 전폭적인 금융 지원과 쉬운 인허가 절차 덕분에 초기 투자 부담이 적었고, 폭발적인 수요는 곧 높은 매출로 이어졌습니다. 당시에는 매출의 절반 이상을 순이익으로 가져가는 경우도 흔했다고 전해집니다. 잘되는 모텔 하나로 만족하지 않고, 대출을 받아 또 다른 모텔을 짓는 식으로 사업을 확장하여 여러 개의 모텔을 소유하게 된 사업가들이 상당수였습니다. 이 시기는 한국 모텔 산업의 황금기이자, 많은 이들에게 성공 신화를 안겨준 특별한 때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