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론: 우리 경제를 뒤흔든 ‘한 기업’의 경고
최근 우리 경제계를 뒤흔들 뻔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바로 석유화학 기업 ‘여천NCC’가 부도 직전까지 내몰렸던 일입니다. 이 사건은 단순히 한 기업의 위기를 넘어, 대한민국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석유화학 산업 전체가 벼랑 끝에 서 있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경고등이었습니다. 우리가 입는 옷, 쓰는 플라스틱, 타는 자동차까지, 삶의 모든 곳에 스며들어 있는 석유화학 산업. 이 중요한 산업이 왜 흔들리게 되었는지, 그리고 우리는 어떤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1. 석유화학, 반도체 다음가는 경제의 기둥
석유화학 산업이 어렵다는 말에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쓰는 안경테, 입는 티셔츠의 섬유, 신는 운동화의 고무까지, 우리 주변의 셀 수 없이 많은 제품이 바로 석유화학 기술의 산물입니다. 실제로 석유화학 산업은 지난해 우리나라 경제 기여도에서 반도체에 이어 2위를 차지했으며, 이는 자동차 산업보다도 높은 수준입니다. 대한민국 제조업과 수출의 기둥 역할을 톡톡히 해온 핵심 산업인 셈입니다. 여천NCC 사태가 더욱 심각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이 기업이 바로 석유화학 산업의 ‘밀가루 공장’과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플라스틱, 비닐, 고무의 가장 기초 원료인 ‘에틸렌’을 생산하며 산업의 시작점을 책임지고 있었죠. 그런 알짜배기 기업마저 흔들린다는 것은 산업 전체의 기반이 무너지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2. 끝없는 추락, 무엇이 위기를 불렀나?
한때 국내 연봉 1위 기업이었던 여천NCC가 3년간 8천억 원이 넘는 누적 적자를 기록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가장 큰 원인은 중국의 대규모 증설입니다. 중국이 막대한 양의 석유화학 제품을 쏟아내면서 공급 과잉 상태가 되었고, 국내 공장들은 가동률을 85% 이상 유지해야 수익이 나는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70%대까지 떨어졌습니다. 즉, 공장을 돌리면 돌릴수록 손해가 나는 상황에 처한 것입니다. 여기에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라는 근본적인 한계도 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중동 국가는 원유에서 곧바로 에틸렌을 뽑아내는 기술로 압도적인 가격 경쟁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우리가 원유를 수입해 나프타를 분해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치는 동안, 그들은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제품을 만들어내니 당해낼 재간이 없는 것입니다. 더 뼈아픈 것은, 우리가 이런 범용 제품 생산에 안주하는 동안 일본 등 경쟁국들은 고부가가치 ‘스페셜티’ 제품으로 일찌감치 사업 구조를 전환했다는 점입니다. 기술 개발을 통해 위기를 대비하지 못한 결과가 지금의 혹독한 현실로 돌아온 것입니다.

3. 포기할 수 없는 이유, ‘요소수 사태’의 교훈
상황이 이렇다 보니, 차라리 가망 없는 석유화학 산업을 포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필수 산업의 공급망을 특정 국가에 의존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똑똑히 경험했습니다. 바로 2021년 전국을 혼란에 빠뜨렸던 ‘요소수 사태’입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요소 생산을 완전히 중단하고 전량을 중국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중국이 수출을 막자, 전국의 화물차가 멈춰 서고 물류 대란이 일어날 뻔한 아찔한 상황을 겪어야 했습니다. 석유화학 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우리가 기초 소재 생산을 포기하고 전적으로 중국과 중동에 의존하게 된다면, ‘제2의 요소수 사태’는 언제든 재현될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경제적 손실을 넘어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석유화학 산업을 쉽게 놓을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4. 남은 시간 3년, 고통스러운 구조조정의 시작
“이대로 가면 3년 후 국내 석유화학 기업의 절반이 사라진다.” 한 컨설팅 업체의 암울한 보고서가 나온 직후, 정부도 부랴부랴 구조조정안을 발표했습니다. 핵심은 경쟁력을 잃은 범용 제품 생산량을 줄이고, 고부가가치 스페셜티 제품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하라는 것입니다. 방향은 옳지만, 문제는 실행 방식에 있습니다. 정부는 누가, 어떤 사업을, 얼마나 줄일지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정해서 보고하라고 공을 넘겼습니다. 하지만 각자의 생존이 걸린 문제 앞에서 원만한 합의가 가능할까요? 당장 여천NCC의 두 대주주인 한화와 DL케미컬조차 서로 다른 이해관계로 극심한 갈등을 겪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수많은 기업이 얽혀있는 산업 전체의 구조조정을 자율에만 맡기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결론: 벼랑 끝에서 다시 길을 찾아야 할 때
석유화학 산업의 구조조정은 시설 폐쇄와 감원 등 큰 고통이 따르는 길입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의 고통이 두려워 곪은 상처를 방치한다면, 머지않아 온몸이 썩어 들어가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번 위기를 대한민국 석유화학 산업이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범용 제품 중심에서 고부가가치 스페셜티 중심으로 체질을 완전히 바꾸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정부는 보다 적극적인 중재와 제도적 지원을, 기업은 눈앞의 이익을 넘어 산업 전체의 미래를 보는 전향적인 자세를 보여주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