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도를 펼치면 드는 궁금증, 왜 말레이시아는 둘로 나뉘어 있을까?
세계 지도를 펼쳐보면 유독 눈에 띄는 나라가 있습니다. 바로 말레이시아입니다. 러시아나 미국처럼 본토와 떨어진 월경지를 가진 나라는 종종 있지만, 말레이시아처럼 바다를 사이에 두고 나라가 거의 반으로 나뉜 형태는 매우 독특하죠. 한쪽은 말레이 반도에, 다른 한쪽은 보르네오 섬 북부에 자리 잡고 있으며, 두 지역 사이의 거리는 무려 640km에 달합니다. 어떻게 이런 독특한 영토가 만들어졌을까요? 그리고 이토록 멀리 떨어진 두 지역은 어떻게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국가로 유지되고 있을까요? 오늘은 이 흥미로운 지리적 미스터리 뒤에 숨겨진 역사와 정치 이야기를 쉽고 친절하게 풀어보겠습니다.

1. 시작부터 달랐던 두 땅, 반도와 보르네오
놀랍게도 오늘날 한 나라를 이루는 반도 말레이시아와 동 말레이시아는 오랜 역사 동안 완전히 별개의 세상이었습니다. 물론 두 지역 모두 11세기경 이슬람이 전파되며 여러 토착 이슬람 왕국이 세워졌다는 공통점은 있습니다. 하지만 그 내용은 전혀 달랐죠. 반도에서는 15세기 ‘말라카 술탄국’이 동남아 해상 무역의 중심지로 강력한 중앙 집권 체제를 구축했습니다. 반면, 동 말레이시아의 ‘브루나이 술탄국’은 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영향력을 행사했을 뿐, 험준한 내륙에는 원시 신앙을 믿는 수많은 부족이 흩어져 살아가는 분열된 사회였습니다. 종교, 인종 구성, 정치 체제까지 모든 것이 달랐던 두 땅은 각자의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2. 제국주의와 냉전, 예상치 못한 만남을 만들다
서로 다른 길을 걷던 두 지역이 하나의 운명으로 묶이게 된 것은 바로 서구 열강의 등 때문이었습니다. 16세기부터 동남아의 풍부한 자원을 노린 유럽 국가들이 몰려왔고, 오랜 각축전 끝에 20세기 초 영국이 현재 말레이시아 영토 대부분을 식민지로 삼게 됩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의 힘은 약해졌고, 전 세계적으로 식민지 독립의 물결이 거세졌습니다. 이때 세계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대립하는 냉전 시대에 접어들었고, 동남아에도 공산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다급해진 영국은 묘안을 내놓습니다. 동남아 식민지들을 그냥 독립시키면 공산화될 위험이 크니, 이들을 하나로 묶어 체급을 키운 강력한 반공 민주주의 국가로 만들자는 것이었죠. 영국의 이러한 전략적 계산이 바로, 지금의 말레이시아 영토의 밑그림이 되었습니다.

3. 하나의 연방, 서로 다른 속사정
영국은 당시 가장 발전했던 반도 말레이시아를 중심으로 연방 결성을 추진했습니다. 반도 말레이시아의 지도자 역시 공산주의 위협을 느끼고 있었고, 보르네오의 풍부한 목재와 석유 자원을 확보해 경제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점에서 영국의 제안에 동의했습니다. 문제는 당사자인 동 말레이시아(보르네오)였습니다. 반도에 비해 모든 면에서 낙후되었던 그들은 연방에 가입하면 경제적 혜택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과 함께, 발전된 반도 측에 의해 모든 것을 착취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결국 반도 측이 막대한 경제 지원을 약속하고 영국이 안보적으로 압박하면서, 동 말레이시아의 소수 엘리트들은 주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연방 가입에 동의하게 됩니다. 그렇게 1963년, 서로 다른 꿈을 꾼 채 불안한 동거를 시작한 ‘말레이시아 연방’이 탄생했습니다. (참고로, 당시 함께 연방에 참여했던 싱가포르는 인종 갈등 문제로 2년 만에 탈퇴했고, 브루나이는 처음부터 연방 가입을 거부하여 현재의 영토가 완성되었습니다.)

4. 힘의 불균형이 만든 아슬아슬한 통합
그렇다면 말레이시아는 어떻게 지금까지 분열되지 않고 유지될 수 있었을까요? 안타깝게도 그 비결은 아름다운 통합이 아닌, ‘힘의 불균형’에 있습니다. 연방 결성 이후, 정치와 경제의 중심인 반도 말레이시아는 연방 정부를 통해 동 말레이시아를 강력하게 통제하기 시작했습니다. 약속했던 경제 지원은 축소되거나 무산되었고, 동 말레이시아의 주요 공직은 반도 출신 인사들로 채워졌습니다.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겠다는 약속과 달리 이슬람화 정책이 추진되기도 했죠. 동 말레이시아는 풍부한 천연자원을 공급하는 기지 역할을 했지만, 그 이익은 대부분 반도로 흘러 들어갔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까지도 동 말레이시아는 반도에 비해 인프라가 부족하고 소득 수준이 낮은 지역으로 남아있습니다. 이처럼 강력한 중앙 정부의 통제와 경제적 종속 관계가 두 지역을 아슬아슬하게 묶어두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동 말레이시아 내부에서는 분리 독립의 목소리가 꾸준히 나오고 있지만, 연방 정부의 강력한 통제 아래 현재의 상태가 유지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