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론: 왜 소니는 TV 사업을 포기했을까?
한때 ‘TV하면 소니’라는 공식을 만들었던 전자제품의 제왕 소니가 TV 사업에서 사실상 손을 떼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일본 소니는 TV 사업 부문을 중국 가정 기업 TCL과 합작 법인으로 설립하기로 했는데, TCL이 지분 51%로 경영권을 가져가는 구조입니다. 이는 소니가 TV 제조 전면에서 물러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많은 이들이 소니의 이 같은 선택에 의문을 품지만, 사실 이 결정은 소니가 오래전부터 준비해온 전략적 전환의 일환입니다. 소니는 더 이상 단순한 가전 기업이 아닙니다. 게임, 영화, 음악, 그리고 이미지 센서와 자율주행차 기술로 무장한 엔터테인먼트·테크놀로지 기업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1. TV 제조 사업의 퇴장: 변화의 흐름을 놓친 대가
소니는 브라운관 TV 시대 세계 최고의 TV 브랜드로 군림했습니다. 미국과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가정에서 TV는 무조건 소니라는 인식이 강했죠. 그러나 2000년대 LCD TV 대중화라는 산업 패러다임의 변화를 소니는 제대로 읽지 못했습니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공세에 밀리며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잃었고, 팔면 팔수록 적자가 늘어나는 악순환이 반복되었습니다. 결국 2012년 히라이 가오 사장은 프리미엄 라인만 남기고 TV 사업 전반을 정리하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단행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자존심이던 프리미엄 라인마저 한국과 중국 기업들의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에 밀리자, 소니는 최종적으로 TV 제조 사업에서의 전면적인 철수를 결정하게 된 것입니다.

2. 콘텐츠 왕국의 부활: 게임, 영화, 음악이 소니를 먹여 살린다
소니의 진짜 변신은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현재 소니 전체 매출의 60% 이상이 게임, 영화, 음악 같은 콘텐츠 사업에서 발생합니다. 이는 소니가 가전 기업이라는 과거의 정체성을 벗고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완벽히 체질을 개선했음을 보여줍니다. 그 중심에는 누적 판매량 8,400만 대를 넘긴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 5와, 넷플릭스 최다 시청 기록을 갈아치우며 전 세계를 강타한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이 있습니다. 음악 부문에서도 마이클 잭슨, 비욘세 등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의 판권을 보유하며 지속적인 수익을 창출하고 있죠. 소니의 지혜는 ‘IP(지적재산권) 사업’의 가치를 일찍이 깨달았다는 점입니다. TV는 한번 팔면 끝이지만, 게임, 영화, 음악 IP는 지속적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자산이 됩니다.

3. 이미지 센서: 소니의 숨은 왕牌, 미래 기술의 핵심
소니를 먹여 살리는 또 다른 비밀 병기는 ‘이미지 센서’입니다. 이미지 센서는 렌즈에 들어온 빛을 디지털 신호로 바꾸는 시스템 반도체로, 디지털 카메라나 스마트폰 카메라의 눈과 같은 핵심 부품입니다. 현재 소니는 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으며, 글로벌 점유율 50% 이상으로 2위 삼성전자(10%대)를 압도하는 수준입니다. 이 기술의 중요성은 자율주행차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더욱 부각되고 있습니다. 차량 주변 환경을 정교하게 인식해야 하는 자율주행 시스템에는 고성능 카메라와 이미지 센서가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소니는 이미 이 미래 시장을 예견하고 기술력을 축적해왔으며, 이제 그 결실을 맺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4. 자율주행차 아필라(Afeela): 달리는 엔터테인먼트 공간
소니의 미래 전략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분야가 바로 자율주행차입니다. 소니는 자동차 제조사 혼다와 손잡고 자율주행차 ‘아필라(Afeela)’를 선보였습니다. 이 차량은 2026년 북미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닙니다. 소니는 혼다의 제조 능력에 자신들의 이미지 센서 기술과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를 결합해, 자동차를 ‘달리는 엔터테인먼트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한 대당 50여 개의 이미지 센서가 탑재될 것으로 예상되는 아필라는 소니의 기술력과 콘텐츠 포트폴리오가 융합된 결과물입니다. 이는 소니가 하드웨어 제조에서 벗어나, 자신의 핵심 기술과 IP를 다양한 산업과 결합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겠다는 전략적 의지를 보여줍니다.

5. 유연한 IP 전략: 리스크는 정리하고, 핵심은 키운다
소니의 성공 뒤에는 냉철한 IP(지적재산권) 관리 전략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귀멸의 칼날’입니다. 코로나19로 극장 흥행이 불투명해지자, 소니는 미련 없이 넷플릭스에 스트리밍 판권을 넘겼습니다. 그 결과 작품은 전 세계적인 흥행을 기록했고, 소니는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하면서 속편 제작에도 함께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반면, 오랜 기간 검증되어 지속적인 수익을 창출하는 ‘피너츠(Peanuts)’ 같은 IP의 지분은 80%까지 높이며 직접적 소유를 강화했습니다. 이처럼 소니는 리스크가 큰 판권은 과감히 정리하고, 장기적으로 확장 가능한 핵심 IP는 집중 투자하는 ‘이중 전략’을 구사하며 효율적인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결론: 미래 먹거리를 향한 소니의 도전이 주는 교훈
워크맨과 트리니트론 TV로 세계를 호령했던 ‘전자 왕국’ 소니는 이제 존재 자체를 바꾼 기업입니다. TV 제조라는 전통적 강점에서 물러나는 선택은 실패가 아닌, 새로운 성장을 위한 전략적 후퇴였습니다. 그 빈자리를 콘텐츠 IP, 이미지 센서 기술, 그리고 자율주행차라는 미래 지향적 사업으로 채우며 소니는 한 차원 높은 경쟁 구도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들의 행보는 변화하는 시장 환경에서 기업이 어떻게 자기 혁신을 이루어내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본보기를 제공합니다. 단순 제조업에 머물지 않고 기술력과 콘텐츠를 융합해 고부가가치 생태계를 구축하는 소니의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 우리는 주목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