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기와 수도가 끊긴 사무실에서 시작된 반란
2019년, 한국의 한 AI 반도체 스타트업에서 직원 월급 지급이 중단되었습니다. 사무실 수도가 끊기고 전기까지 나가는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그들은 반도체 설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백준호 대표는 동료들에게 ‘1년만 해보고 안 되면 헤어지자’고 말했고, 그렇게 시작된 퓨리오사 AI의 여정은 영화 ‘매드맥스’의 여전사 이름처럼 AI 반도체 시장의 절대자 엔비디아에 대한 반란이었습니다. 삼성전자와 AMD에서 탄탄한 커리어를 쌓은 백 대표가 축구장에서 다리가 부러져 6개월간 침대에 누워 AI 논문 수백 편을 읽으며 발견한 것은 ‘AI를 돌릴 반도체가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당시 AI 반도체 시장은 엔비디아가 90%를 장악하고 있었고, 삼성전자조차 손을 든 영역이었습니다.

AI 추론만을 위한 F1 머신, 칩워보이의 탄생
퓨리오사 AI가 개발한 칩워보이는 기존 반도체와 근본적으로 다른 접근법을 취했습니다. CPU가 복잡한 판단을 하나씩 처리하는 ‘두뇌’라면, GPU는 단순 연산을 수천 개 동시에 처리하는 ‘근육’입니다. 엔비디아 GPU는 원래 게임 그래픽용으로 태어났으나 AI 학습에 적합해지며 시장을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AI에는 ‘학습’과 ‘추론’ 두 단계가 있습니다. 학습은 AI를 가르치는 일회성 과정이라면, 추론은 학습된 AI를 실제로 사용하는 과정으로 채GPT에 질문할 때마다, 넷플릭스가 영화를 추천할 때마다 발생합니다. 핵심은 학습은 한 번이지만 추론은 매초 일어난다는 점입니다. 퓨리오사는 학습 기능과 그래픽 처리를 모두 제거하고 오로지 AI 추론만을 위해 최적화된 ‘F1 머신’을 만들었습니다. 엔비디아 GPU가 짐도 싣고 레이싱도 하는 트럭겸 스포츠카라면, 퓨리오사의 칩은 달리기만 미친 듯이 잘하는 순수 레이싱카인 셈입니다.

MLPerf 벤치마크에서 증명된 기술력
퓨리오사 AI의 기술력은 객관적인 숫자로 증명되었습니다. AI 반도체 업계의 표준 벤치마크인 MLPerf는 ‘AI 칩 수능’으로 불리며, 구글, 엔비디아, 인텔 등 전 세계 반도체 기업이 동일한 조건에서 성능을 겨룹니다. 2019년 퓨리오사 AI는 아시아 스타트업 최초로 이 벤치마크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2021년에는 1세대 칩 워보이를 시제품으로 받은 지 겨우 몇 주 만에 MLPerf에 출품하여 엔비디아의 A2 칩 대비 우수한 성능을 기록했습니다. 특정 이미지 분류 작업에서 가격 대비 성능과 전력 효율이 엔비디아 최신 칩을 압도한 것입니다. 2022년에는 같은 칩을 사용하면서 소프트웨어 개선만으로 성능을 두 배 끌어올리는 놀라운 결과를 보여주었습니다. 이는 하드웨어뿐 아니라 소프트웨어 역량까지 갖추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었습니다.

TSMC의 선택과 메타의 1조 2천억 인수 제안
퓨리오사 AI의 기술력을 인정한 첫 번째 글로벌 기업은 TSMC였습니다. 전 세계 빅테크가 줄 서서 칩을 맡기는 TSMC가 직원 200명도 안 되는 한국 스타트업과 손을 잡고 최첨단 공정으로 칩을 찍어 주겠다고 한 것은 기술력을 직접 검증한 후의 결정이었습니다. 더 큰 드라마는 2025년 초에 펼쳐졌습니다. 메타의 마크 저커버그가 퓨리오사 AI를 8억 달러(한화 약 1조 2천억 원)에 인수하겠다고 제안한 것입니다. 이 제안은 급여도 못 주고 전기도 끊겼던 스타트업에게는 엄청난 금액이었지만, 백준호 대표는 거절했습니다. ‘우리 칩 개발을 접고 메타칩을 개발하기보다 원래 꿈꿨던 우리 길을 계속 가보겠다’는 의지였습니다. 이 결정은 회사 내부에서도 논란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직원들이 자리를 지켰습니다.

AI 추론 시장의 폭발적 성장과 쿠다 장벽
퓨리오사 AI가 노리는 AI 추론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채GPT 사용자 1억 명이 매일 질문할 때마다, 각종 생성형 AI 서비스가 새로 출시될 때마다 추론 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합니다. 서비스 운영 비용의 80\~90%가 추론에서 발생하는 현재, 전력 효율이 높은 추론 특화 칩의 필요성은 절실해지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AI 데이터 센터 때문에 전력 부족 경고가 나올 정도입니다. 그러나 퓨리오사 AI 앞에는 엔비디아의 ‘쿠다’라는 거대한 소프트웨어 생태계 장벽이 있습니다. 전 세계 AI 개발자의 90%가 사용하는 이 개발 도구는 기술적 우월성보다 시장 점유율에서 더 중요한 요소입니다. 퓨리오사는 이에 대응해 자체 소프트웨어 스택을 개발하고 파이토치 호환성을 확보하며 생태계 구축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한국 AI 시스템 반도체의 미래를 향한 여정
퓨리오사 AI는 엔비디아를 전면전으로 이기겠다는 회사가 아닙니다. 그랬으면 이미 졌을 것입니다. 이 회사는 더 영리하게 엔비디아의 갑옷에서 가장 약한 부분인 AI 추론 시장의 가성비 영역을 정확히 공략하고 있습니다. 2027년 3세대 칩 개발을 목표로 하는 퓨리오사 AI 앞에는 여전히 누적 2천억 원의 적자, 쿠다 생태계 장벽, 양산과 상용화의 ‘죽음의 계곡’ 같은 도전 과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회사가 단순한 꿈꾸는 스타트업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글로벌 벤치마크에서 숫자로 증명했고, TSMC가 기술을 인정했으며, 메타가 1조를 주고 사려 했고, 그 제안을 거절하고 독자 생존을 택한 의지가 있습니다. 한국이 메모리 반도체 이후 AI 시스템 반도체에서 다시 이름을 올릴 수 있을지, 그 갈림길에 퓨리오사 AI가 서 있습니다. 돌이 날아가는 중입니다. 급소를 맞출지 빗나갈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그 돌의 궤적이 점점 정확해지고 있다는 것은 숫자가 증명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