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론: 조용하지만 거대한 탈출이 시작됐다
먼 곳의 이야기 같지만, 어쩌면 우리의 미래일지도 모릅니다. 한때 세계를 호령했던 영국에서 조용하지만 거대한 청년들의 엑소더스가 시작되었습니다. 매년 수십만 명의 젊은이들이 자국을 등지고 해외로 향하고 있으며, 이 현상은 단순히 일자리 문제를 넘어선 구조적 분노에서 비롯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 심상치 않은 ‘젠지 엑소더스’의 실체와 그 이면에 숨겨진 영국 사회의 깊은 그림자를 함께 파헤쳐 보겠습니다.

젠지 엑소더스: 거제시 인구만큼의 청년들이 떠나다
지금 영국 언론은 이 현상을 ‘젠지(Gen Z) 엑소더스’ 또는 ‘영 엑소더스’라 부릅니다. 35세 미만 청년들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며 대규모로 영국을 떠나고 있기 때문이죠. 무려 한 해에 19만 5천 명, 이는 경상남도 거제시 인구 전체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과 맞먹는 엄청난 규모입니다. 심지어 영국 청년 40%는 향후 5년 내 이민을 계획 중이라고 답했습니다. 이들은 두바이, 호주, 싱가포르 등 영어권 국가이자 세금이 낮고 일자리가 풍부한 곳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대체 무엇이 이들을 고국을 떠나게 만드는 것일까요?

세대 갈등의 핵: 국민 연금 ‘트리플 록’
청년들의 분노 뒤에는 ‘국민 연금’ 문제가 깊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영국 국민 연금은 ‘트리플 록(Triple Lock)’이라는 독특한 제도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매년 임금 상승률, 물가 상승률, 또는 2.5% 중 가장 높은 수치를 연금 인상액에 반영하는 구조입니다. 이 때문에 연금을 받는 고령층은 물가가 오르든 내리든 매년 안정적으로 연금 인상을 보장받습니다. 하지만 이 선심성 공약은 국가 부채를 GDP 대비 100%까지 끌어올렸고, 미래 세대인 청년들에게 엄청난 재정적 부담을 전가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연금 재정 충당을 위해 다른 복지 예산이 삭감되면서, 노년층은 혜택을 누리는 반면 청년층은 ‘인터제너레이셔널 이쿼티(Intergenerational Inequity, 세대 간 불평등)’라는 깊은 박탈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런던 공화국의 슬픈 자화상: 높은 주거비와 불균형
영국은 마치 한국의 서울 공화국처럼 ‘런던 공화국’이라 불릴 정도로 런던 중심주의가 심각합니다. 런던의 1인당 GDP는 다른 지역의 거의 두 배에 달해,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아 런던으로 몰릴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런던의 주거비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다른 지역보다 주당 370파운드(약 70만원)를 더 내야 할 정도이며, 침대 하나 들어가는 작은 방이 월 170만원이 넘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주택 공급 부족과 자재값 상승은 임대료 폭등으로 이어져 청년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소득 양극화를 보여주는 ‘그렉스 브리튼’과 ‘프레테 망제 브리튼’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날 정도로 지역 간 불균형은 심화되고 있습니다.

브렉시트의 그림자: 청년들에게 날아든 청구서
청년들이 직접 선택하지 않은 ‘브렉시트’는 영국 경제에 깊은 상처를 남겼고, 그 고통은 고스란히 청년들의 몫이 되고 있습니다. 기업 투자가 위축되고, 금융 허브로서의 위상이 흔들리며, 생산성은 낮아지고 일자리는 줄었습니다. 특히 금융 서비스업 비중이 높은 영국에서는 AI의 인간 노동력 대체 속도가 선진국 중 가장 빨라 청년 실업률이 심각한 수준입니다. ‘니트족(NEET)’이 청년 8명 중 1명에 달할 정도입니다. 또한, 브렉시트 이후 노동력 유입이 줄어들어 물가는 2022년에 무려 11%나 폭등했습니다. 선택은 노년층이 했지만, 그 대가는 청년들이 치르고 있는 ‘내가 한 선택도 아닌데 날아온 청구서’인 셈입니다.

남겨진 자들의 비극: 빈곤과 범죄의 악순환
영국을 떠나는 청년들이 그나마 ‘행운아’라면, 남겨진 이들의 삶은 더욱 비극적입니다. 생산 능력이 부족하거나 자본, 네트워크가 없는 이들은 영국 사회의 빈곤층으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하위 10% 가구는 몰타, 슬로바키아 같은 나라보다도 못 사는 수준이며, 선진 복지 국가라는 영국의 명성은 이제 ‘옛말’이 되었습니다. 사회는 더욱 삭막해져 ‘숍 리프팅 에피데믹(Shoplifting Epidemic, 가게 좀도둑 유행병)’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절도 사건이 1분당 3건꼴로 발생합니다. 심지어 치즈나 스테이크에 도난 방지 태그를 붙일 정도라고 합니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어린이 빈곤입니다. 30년 만에 최고 수준인 어린이 3명 중 1명이 빈곤선에 처해 있어, 미래 세대마저 위협받는 암울한 현실을 보여줍니다.

결론: 한국의 미래를 경고하는 영국의 현재
영국의 ‘젠지 엑소더스’는 단순히 한 국가의 문제가 아닌, 전 세계 고령화 사회가 직면할 수 있는 경고등입니다. 젊은 세대를 붙잡을 구조 개혁을 단행하든, 아니면 노년층과 빈곤층만 남는 사회로 전락하든, 영국은 중대한 기로에 서 있습니다. 브렉시트라는 선택의 대가를 청년들이 치르고 있듯, 한국 역시 이미 청년들이 혹독한 현실을 보내고 있습니다. 영국의 사례를 통해 우리의 미래를 되돌아보고, 세대 간 공존과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한 해법을 모색해야 할 때입니다. 씁쓸하지만,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