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론: 베일 속의 거인, 팔란티어를 아시나요?
요즘 미국 증시에서 가장 뜨거운 기업을 꼽으라면 단연 ‘팔란티어(Palantir)’일 겁니다. 2024년 S&P 500과 나스닥 100에 연달아 편입되었고, 작년 한 해에만 주가가 340%나 폭등하며 S&P 500 기업 중 상승률 1위를 기록했죠. 올 초에는 예상을 뛰어넘는 실적으로 한 달 만에 70% 넘게 오르며 서학개미의 매수 상위 종목에도 이름을 올렸습니다. 하지만 이런 화려한 성적표 뒤에는 항상 이런 질문이 따라붙습니다. “그래서 팔란티어, 도대체 뭐 하는 회사야?” 가치 평가의 대가조차 “무슨 일을 하는지 정확히 모르겠다”고 말할 정도로 그 정체가 모호한 기업. 누군가는 방산 기업, 누군가는 데이터 컨설팅, 또 다른 누군가는 AI 소프트웨어 회사라고 부르는 팔란티어의 진짜 모습은 무엇일까요? 무섭게 치솟는 주가는 과연 정당한 것인지, 그 미스터리를 함께 파헤쳐 보겠습니다.

9/11의 비극에서 탄생한 천리안
팔란티어의 정체성을 이해하려면 2001년 9월 11일, 뉴욕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페이팔의 창업자 피터 틸은 9/11 테러를 목격하며 ‘우리가 데이터를 제대로 분석했다면 이 비극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에 사로잡혔습니다. 이 아이디어가 바로 팔란티어의 시작이었습니다. 회사 이름 역시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적을 감시하고 정보를 탐색하는 천리안의 돌 ‘팔란티르’에서 따왔죠. 이들의 비전에 주목한 미국 정부, 특히 CIA는 초기 투자자이자 핵심 고객사가 되어 대테러 활동을 위한 데이터 분석 솔루션 개발을 지원했습니다. 팔란티어의 기술이 9/11 테러의 주범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작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회사는 세상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탄생 배경은 팔란티어의 핵심 사명에 깊이 각인되었습니다. 바로 ‘미국과 서구 세계를 가장 강력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지금도 중국, 러시아 같은 반서방 국가와는 거래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구슬 서 말을 보배로’ 만드는 마법, 온톨로지
그렇다면 팔란티어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할까요?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우리 속담처럼, 팔란티어는 세상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데이터를 모아 의미 있는 ‘보배’로 만들어주는 일을 합니다. 여기서 ‘온톨로지(Ontology)’라는 핵심 기술이 등장합니다. 온톨로지는 엑셀, PDF, 이미지, 텍스트 등 제각각인 데이터에 의미와 관계를 부여해 컴퓨터와 AI가 쉽게 이해하고 추론할 수 있는 형태로 정리해주는 모델링 기법입니다. 예를 들어, 인공위성이 찍은 지도 데이터는 자동차 정보와 연결되면 ‘내비게이션 최적화’에 쓰이지만, 전장의 드론과 연결되면 ‘적군 예상 위치 파악’에 활용됩니다. 이처럼 조직의 목표와 규칙에 맞게 데이터를 재정의하고 분류하여 최적의 의사결정을 실시간으로 돕는 것이죠. 덕분에 미국 통신사 AT&T는 5년 걸릴 작업을 3개월 만에 끝냈고, 자동차 배터리 회사 클라리오스는 4시간 걸리던 공급망 관리 업무를 한 명이 몇 분 만에 처리하게 되었습니다.

정부를 넘어 세계로, AI 시대를 여는 플랫폼
팔란티어는 정부 기관을 위한 ‘고담(Gotham)’ 플랫폼으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민간 기업 시장으로 빠르게 영역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금융, 제약, 에너지 등 다양한 산업에 특화된 운영체제 ‘파운드리(Foundry)’와 2023년 출시한 AI 플랫폼 ‘AIP’가 그 중심에 있습니다. 특히 AIP는 오픈AI의 챗GPT나 메타의 라마 같은 다양한 AI 모델을 고객사의 데이터에 통합시켜주는 역할을 합니다. 최근 AI 모델의 성능이 상향 평준화되고 비용이 저렴해지는 현상은 팔란티어에게 큰 호재입니다. 왜냐하면 AI가 아무리 뛰어나도 결국 학습할 데이터가 필요하기 때문이죠. 20년간 갈고닦은 온톨로지 기술로 데이터를 AI가 가장 효율적으로 학습할 수 있도록 미리 정리해주는 팔란티어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진 것입니다. 한국의 HD현대중공업, DL이앤씨, 심지어 불닭볶음면 신드롬의 주인공 삼양식품까지 팔란티어의 고객사가 된 이유입니다.

눈부신 성장과 고평가 논란, 팔란티어의 미래는?
팔란티어의 실적은 눈부십니다. 2020년 상장 후 연평균 28% 성장했으며, 지난 4분기에는 성장률을 36%까지 끌어올렸습니다. 성장성과 수익성을 더한 ‘Rule of 40’ 지표는 기준치(40%)를 두 배나 넘는 81%에 달했죠. 하지만 이런 성장세에도 불구하고 가장 큰 리스크는 ‘해도 너무 비싼 주가’입니다. 주가수익비율(PER)이 600배를 훌쩍 넘어서며 월스트리트 분석가들 대부분이 매수 추천을 주저하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어떤 기업도 이 정도의 가치 평가를 정당화할 만큼 빠르게 성장하지는 못했다는 비판이죠. 반면, 팔란티어처럼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독보적인 기업에 기존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맞느냐는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과연 팔란티어는 모두의 우려를 딛고 독보적인 기술력으로 성장을 증명해낼까요? 아니면 거품 논란 속에 잠시 피어난 불꽃으로 남을까요? ‘오늘이 가장 싸다’는 믿음과 ‘지나치게 비싸다’는 우려 사이에서, 그 판단은 이제 투자자의 몫으로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