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론: 영정사진이 되어버린 성공의 증표
몇 년 전, 20대 청년들 사이에서 ‘영정사진’은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고급 수입차와 함께 찍은 출고 인증샷. 누군가에게는 성공의 상징이었겠지만, 아는 사람들 눈에는 그것이 바로 ‘경제적 사망 선고’를 의미하는 영정사진이었습니다. 변변한 직업도 없는 20대 청년이 1억 원이 넘는 외제차를 전액 할부로 구매하는 순간, 그의 미래는 이미 정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때 대한민국은 ‘카푸어 공화국’이라 불릴 만큼 과시적인 자동차 소비가 만연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거리를 가득 메우던 그 많던 젊은 외제차 오너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요? 이것은 단순한 자동차 이야기가 아닌, 우리 시대의 욕망과 현실을 비추는 슬픈 자화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 욕망을 파고든 악마의 속삭임: 금융 시스템의 덫
카푸어 현상의 중심에는 기이한 시장 논리가 있었습니다. 물건을 파는 사람이 현금을 거부하는 상황, 상상해보셨나요? 자동차 시장에서는 이것이 현실이었습니다. 2010년대 이후 자동차 시장의 주도권은 제조사에서 금융사로 넘어갔습니다. 딜러의 주된 수입원은 차 판매 마진이 아닌, 고객에게 고금리 할부 상품을 연결해주고 받는 ‘금융 리베이트’가 되었습니다. 현금 고객은 딜러에게 큰 이득이 되지 않지만, 할부 고객은 수백만 원의 추가 수입을 안겨주었죠. “현금은 아껴서 투자하시고, 이자는 싸니 할부로 하세요.” 이 달콤한 거짓말은 카푸어 양산의 첫 단추였습니다. 나아가 금융사들은 신용도가 낮고 모아둔 돈이 없는 20대 청년들을 새로운 먹잇감으로 삼았습니다. 차값, 취등록세, 보험료에 심지어 유흥비까지 얹어주는 ‘전액 할부’라는 괴물이 탄생한 것입니다. 서류 위조와 같은 ‘작업 대출’이 성행했고, 금융사는 이를 알면서도 눈감아주었습니다. 모두가 잠시 행복해 보이는 이 거래의 끝에는 정해진 파멸만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2. ‘좋아요’를 위한 질주: SNS와 과시의 시대
한국 사회에서 자동차는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오랫동안 부와 계급의 상징이었습니다. 1980년대 ‘각그랜저’가 성공의 증명서였던 것처럼, 2000년대에는 독일 3사의 수입차가 그 자리를 이어받았죠. 여기에 2010년대 스마트폰과 SNS의 등장은 욕망의 불길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과거에는 동네 사람들에게나 자랑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나의 성공을 전시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외제차는 최고의 SNS 소품이었습니다. 벤츠 엠블럼이 박힌 핸들, 조수석의 명품 가방, 손목의 롤렉스 시계. 이 ‘3위일체’ 사진 한 장이면 수많은 ‘좋아요’와 부러움 섞인 댓글이 쏟아졌습니다. 그 짜릿한 도파민과 인정 욕구의 달콤함은 젊은이들을 위험한 질주로 내몰았고, 저금리 기조와 맞물려 대한민국은 카푸어 전성시대를 맞이하게 됩니다.

3. 화려한 영정사진 뒤의 비극: 돈 먹는 하마의 현실
하지만 SNS 속 화려한 삶 뒤에는 처참한 현실이 숨어있었습니다. 자동차는 구매하는 순간부터 돈 먹는 하마가 된다는 사실을 그들은 간과했습니다. 25세 남성 기준, 수입 스포츠카의 보험료는 연 400만 원에 육박하고, 할부 이자, 유류비, 세금, 수리비까지 더하면 월급의 대부분을 차에 쏟아부어야 했습니다. 월 250만 원을 버는 사회초년생이 매달 150만 원 이상을 차에 바치는 기형적인 삶이 시작된 것이죠. 특히 원금 상환을 미루는 ‘유예 할부’의 마법은 3년 뒤 냉혹한 현실로 돌아왔습니다. 수천만 원의 원금을 일시 상환하라는 통보 앞에, 이미 중고차 가격은 반 토막이 나 있습니다. 결국 차를 팔아도 빚만 남고, 차는 압류당하며 20대의 나이에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것. 이것이 바로 영정사진 뒤에 가려져 있던 잔혹동화의 진짜 결말이었습니다.

4. 카푸어의 멸종, 그리고 새로운 욕망의 탄생
그 많던 카푸어들은 왜 갑자기 사라졌을까요? 첫째, 고금리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제로금리 시절 3\~4%였던 할부 금리가 10%를 훌쩍 넘기며 이자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둘째, ‘독일차=명품’이라는 환상이 깨졌습니다. 잦은 리콜과 원가 절감 논란이 터져 나왔고, 반대로 제네시스와 같은 국산 프리미엄 브랜드가 실용적인 대안으로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가장 결정적인 원인은 ‘시선의 변화’입니다. 과거 선망의 대상이었던 젊은 외제차 오너는 이제 ‘무모한 사람’ 혹은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했습니다. “저거 카푸어 아니야?”라는 시선 속에서 과시의 효용 가치는 사라졌습니다. 그렇다고 과시욕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욕망은 사라지지 않고 다른 형태로 옮겨갈 뿐입니다. 카푸어의 빈자리는 ‘하우스푸어’, ‘명품족’, ‘오마카세 미식가’ 등 새로운 이름으로 채워졌습니다. 특히 차보다 더 명확한 계급장인 ‘어느 동네, 어느 브랜드 아파트에 사는가’가 새로운 과시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결론: 당신의 운전대는 누가 잡고 있습니까?
지난 60년간의 자동차 역사는 우리 사회의 욕망과 성장통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차에서 내릴 때 느끼는 만족감을 의미하는 ‘하차감’이라는 단어가 유행했지만, 진정한 하차감은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내 통장의 여유와 미래에 대한 확신에서 나옵니다. 내 인생의 운전대를 금융회사나 SNS 속 타인의 시선에 맡기지 마십시오. 그 운전대는 오직 당신만이 잡아야 합니다. 카푸어는 사라졌지만, 형태만 바뀐 또 다른 ‘푸어’들이 우리 곁을 맴돌고 있습니다. 2025년 욕망의 시대를 살아가는 당신은 지금, 무엇을 타고 어디로 향하고 있습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당신의 삶을 더 단단한 길로 이끌어주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