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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경제 / 사회 / 정치

제국의 그림자, 분열의 서막: 유고슬라비아 왕국의 위기와 티토의 등장

작성자 mummer · 2025-12-17
1. 민족 갈등의 심화와 왕정 독재의 그림자

1. 민족 갈등의 심화와 왕정 독재의 그림자

유고슬라비아 왕국은 태생부터 복잡한 운명을 안고 있었습니다. 두 개의 문자와 세 개의 종교, 여섯 개 이상의 문화권 그리고 수많은 소수민족이 한데 묶인 나라는 처음부터 흔들릴 수밖에 없었죠. 1차 대전 승전국이라는 자신감에 찬 세르비아는 통합 왕국을 주도하려 했고,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를 비롯한 다른 민족들은 동등한 대우와 자치를 요구하며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이러한 혼란을 다잡는다는 명목으로 알렉산다르 1세 국왕은 1929년 왕정 독재를 선포했지만, 이는 오히려 민족주의 정서를 자극하는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특히 크로아티아 농민당 당수 스테판 라디치 암살 사건은 크로아티아 민족주의에 불을 지폈고, 강경한 민족주의자들은 안테 파벨리치를 중심으로 크로아티아의 분리 독립을 목표로 하는 무장 조직 ‘우스타샤’를 결성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오랜 피지배 경험과 박탈감에 기반한 동유럽 특유의 극우 민족주의는 크로아티아인의 우월성을 주장하며 세르비아인에 대한 뿌리 깊은 혐오를 부추겼고, 우스타샤는 이러한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이탈리아와 헝가리 등지에서 자금과 무기를 조달하며 조직적인 무장 투쟁을 준비했습니다.

2. 경제 위기와 마르세유 암살 사건

2. 경제 위기와 마르세유 암살 사건

민족 문제로 분열 직전이던 유고슬라비아 왕국은 1920년대 말부터 전 세계를 강타한 미국발 대공황으로 인해 더욱 혼란스러운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약 70% 이상을 농업에 의존하던 유고 경제는 곡물 가격 폭락으로 완전히 붕괴 직전까지 내몰렸고, 농민들의 생활고와 불만은 극에 달했습니다. 이러한 경제적 고통은 기존의 민족 갈등을 더욱 증폭시키는 기름을 부었습니다. 결국 유고의 혼란은 걷잡을 수 없는 비극적인 사건을 불러왔으니, 바로 1934년 10월 9일 마르세유에서 발생한 알렉산다르 1세 국왕 암살 사건입니다. 크로아티아의 분리 독립을 추진하던 우스타샤와 마케도니아 분리 독립 운동을 펼치던 내부 마케도니아 혁명 기구는 알렉산다르 1세 국왕을 공통의 적으로 삼고 암살을 계획했습니다. 당시 프랑스를 방문 중이던 알렉산다르 1세는 허술한 경호 속에서 퍼레이드를 하던 중, 체르노잼스키라는 암살범의 총격으로 사망했습니다. 이 갑작스러운 사건으로 프랑스 외무장관 루이 바르투까지 목숨을 잃었으며, 유고슬라비아 사회는 더욱더 불안정한 상황으로 내몰리게 됩니다.

3. 섭정 체제와 민족 자치 요구의 도미노

3. 섭정 체제와 민족 자치 요구의 도미노

국왕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어린 페타르 2세 국왕을 대신해 당숙인 파블레 왕자가 섭정을 맡게 되었습니다. 파블레 섭정은 알렉산다르 1세의 강력한 왕정 독재와는 달리, 온건하고 타협적인 정책을 추구하며 민족 문제를 대화로 풀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왕권이 크게 흔들린 상황에서 이러한 온건책은 오히려 역효과를 낳았습니다. 크로아티아 민족주의자들은 약해진 중앙 권력을 더욱 강하게 압박했고, 결국 1939년 크로아티아 자치령이 신설되며 행정, 교육, 치안 등 상당한 권한이 크로아티아로 이양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문제 해결이 아닌 또 다른 불씨를 지폈습니다.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은 왕국 분열이라며 강력히 반발했고, 슬로베니아, 보스니아 무슬림, 몬테네그로 등 다른 민족들까지 연달아 자치 요구를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파블레의 타협책은 결국 ‘너도나도 자치’를 외치는 도미노 효과를 불러왔고, 1930년대 유고슬라비아 왕국은 더 이상 하나의 나라라고 부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4. 유럽 정세의 격변과 티토의 부상

4. 유럽 정세의 격변과 티토의 부상

유고슬라비아의 내부 분열이 가속화되던 시기, 유럽의 정세 또한 격변하고 있었습니다. 히틀러의 나치 독일은 레벤스라움(생활권) 확장을 명목으로 오스트리아를 합병하고 체코슬로바키아의 주데텐란트 지방까지 노렸습니다. 영국과 프랑스는 전쟁의 트라우마 속에 뮌헨 협정으로 독일의 팽창을 외교적으로 막으려 했으나, 이는 오히려 동유럽 국가들에게는 서유럽의 배신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유고슬라비아는 ‘제2의 체코슬로바키아’가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며 독일의 경제적 압박에 시달렸고, 고립무원의 상황에 처했습니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유고슬라비아 공산당은 조용히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1930년대 후반, 크로아티아인 아버지와 슬로베니아인 어머니를 둔 ‘티토’가 공산당 총서기가 되면서 역사의 전면에 등장합니다. 티토는 뛰어난 리더십으로 분열된 민족들을 공산주의라는 공통 이념 아래 하나로 묶어냈고, 1941년 나치 독일의 침공으로 유고 왕국이 단 11일 만에 무너지자, 그는 ‘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이라는 대규모 저항군을 조직하여 독일에 맞섰습니다. 약 1만 명으로 시작한 파르티잔은 전쟁 후반 80만 명에 육박하는 강력한 세력으로 성장했고, 이는 훗날 티토가 유고슬라비아를 재통합하는 영웅으로 떠오르는 결정적인 기반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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