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서론: 역사의 뒤안길에서 배우는 파국의 전조
세상의 역사는 수많은 ‘만약’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만약 그날, 그 결정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세상을 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탐험할 ‘그날’은, 한 리더의 비합리적인 신념과 무모한 판단이 한 국가의 군대를 어떻게 처참한 파국으로 이끌었는지 보여주는 섬뜩한 사례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태평양 전선에서 벌어진 ‘인팔 작전’은 단순한 군사적 실패를 넘어, 인간의 오만과 광기가 빚어낸 비극의 한 페이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과연 무엇이 일본군을 스스로 지옥으로 몰아넣게 만들었을까요?

2. 인팔 작전, 파국을 향한 빌드업
1942년 초, 일본군은 진주만 기습과 함께 동남아시아를 휩쓸며 미얀마(옛 버마)까지 장악했습니다. 그러나 버마와 인도 사이에는 험준한 아라칸 산맥과 1km 폭의 친두인강이 가로막고 있었고, 4\~5천 미터에 달하는 산맥과 정글은 침투를 불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당시 버마 주둔 사단장이었던 무타구치 레냐는 이 지형의 험난함을 이유로 인도 침공에 반대했습니다. 하지만 1943년, 모로코 카사블랑카 회담에서 연합군이 중국 장제스에게 보급로를 열기 위해 버마 탈환을 결의하자 상황은 급변합니다. 연합군이 공중 보급을 통해 윈게이트 부대를 침투시키자, 이를 저지해야 한다는 명분과 함께 무타구치 레냐는 버마 지역 전체를 관할하는 남방군 사령관으로 승진하게 됩니다. 권력의 정점에 선 그는 과거의 신중함을 버리고, 불가능에 가까운 인도 침공 작전을 계획하기 시작합니다.

3. 환상의 작전, 현실은 재앙으로
무타구치 사령관은 아라칸 산맥을 넘어 인도를 침공하겠다는 원대한 작전을 입안했으나, 30년 군 경력의 참모진들은 “다 죽는다”며 맹렬히 반대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6주 작전을 3주로 단축하며 강행했고, 보급품 부족 문제에는 “징기스칸 보급”이라는 황당한 해법을 내놓았습니다. 가축과 함께 이동하며 도중에 잡아먹고, 심지어 정글의 풀과 나무껍질을 뜯어 먹으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트럭 1,000대 지원 약속은 90대로 줄고, 그마저도 험난한 지형 탓에 사용 불가능했습니다. D-20일에는 병사들에게 ‘먹을 수 있는 풀 그림’을 나눠주며 생존을 숙지하라는 명령까지 내렸습니다. 현실과 동떨어진 그의 “일본 민족은 초식 민족이다”라는 정신론은 병사들을 미지의 독초와 굶주림의 나락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4. 지옥 같던 전장과 처참한 결말
1944년 3월 8일, 9만 명의 일본군이 인팔 작전을 개시합니다. 그러나 이는 시작부터 재앙이었습니다. 연합군 항공기의 압도적인 공세로 ‘징기스칸 보급’ 물소와 양들은 폭격에 놀라 보급품을 싣고 도주하거나 강물에 쓸려 내려가, 작전 개시 일주일 만에 보급품의 70%가 소실됩니다. 4월에는 우기가 시작되어 몬순 폭우와 산사태가 병사들을 덮쳤고, 먹을 것 없는 병사들은 생쌀 한 줌으로 연명했습니다. 무타구치는 이러한 상황에서도 “천장절(일왕 생일)까지 코히마를 함락시키라”는 비현실적인 명령만 반복했습니다. 한편, 후방에서는 무타구치가 100여 명의 기생을 불러 ‘청명장’이라는 요정에서 호화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납니다. 결국 31사단이 사단장의 지휘 아래 무단 후퇴를 감행하는 초유의 항명 사태가 벌어졌고, 다른 사단들도 속속 철수했습니다. 작전은 7월 10일까지 이어졌고, 9만 명 중 1만 2천 명만이 살아 돌아오는 처참한 결과를 낳았습니다. 대부분은 전투가 아닌 굶주림과 질병으로 사망했습니다.

5. 망각의 역사, 그가 남긴 교훈
인팔 작전은 일본군 역사상 유례없는 대참사였지만, 놀랍게도 무타구치 레냐는 전범 재판에서 불기소 처분되어 풀려났습니다. 그는 종전 후에도 자신의 작전은 완벽했으며, 패배의 원인은 오직 ‘무능한 부하들’ 때문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심지어 전사한 병사들의 장례식장에서조차 자신의 작전 이론을 담은 소책자를 나눠주며 지독한 남 탓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 비극적인 이야기는 한 사람의 잘못된 신념이 수많은 생명을 어떻게 앗아갈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전쟁은 단순히 무기의 싸움이 아니라, 지휘관의 리더십, 보급, 그리고 무엇보다 현실을 직시하는 판단력이 승패를 가른다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인팔 작전은 전쟁의 무모함과 비극성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며, 미래 세대에게 평화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잊지 못할 교훈으로 남아있습니다.